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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기고] 교육감 선거, 차라리 정당이 책임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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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서 공석이 된 교육감을 뽑는 선거가 다음 주로 다가왔다. 여야 후보가 아니라 진영을 표방하는 후보 4명이 공식 후보로 등록되어 있다. 각 진영의 단일 후보로 추대된 두 명의 후보와 정치적 성향을 표방한 두 명의 후보로 나뉘어 있다. 네 사람 중 한 명이 1년 반 정도인 조 전 교육감의 잔여 임기 동안 서울 교육의 행정을 맡게 된다.

여기서 ‘책임진다’라고 하지 않고 ‘맡게 된다’라고 하는 이유는 개인 신분인 교육감이 소극적인 법적 책임을 지는 것 이외에 다른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로 인한 모든 책임이 개인의 몫이 되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 시 보전금도 후보자가 내야 하고, 선거 비용도 개인이 조달해야 한다. 후보자를 추대한 진영에서도 책임을 질 방법이 없다. 진영의 경계도 불분명하고, 기구 자체도 법적 구체성이 없는 임의 단체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교육청의 올해 예산은 12조5000억원에 달한다. 교육감은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 없이 막대한 예산을 쓰기만 하면 되니 ‘교육 소통령’이라 불린다. 미국에서는 교육감이 지역의 교육 예산을 부동산세에 주로 의존하기 때문에 주민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법률에 의해 자동으로 편성된다. 그래서 주민이나 국회, 정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

정치적인 책임도 지지 않는다. 정당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앞세워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당의 개입이 불가능하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1962년 헌법 개정 시 도입된 개념이다. 그때부터 정당이 개입 자체를 못 하게 해놓고선 진영이 후보를 결정하고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 교육계도 이런 상황을 즐기기는 마찬가지다. 정당은 말은 험하게 해도 정책은 중도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진영은 더욱더 극단적이다. 더 극단적인 세력이 교육감 후보를 선발하게 만든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겠다’라고 하거나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심판하겠다’라고 한다. 매우 포괄적이고 전국적이다. 그래서 믿음이 안 간다. 선출직 교육부 장관 공약이거나 5년짜리 교육 대통령의 공약처럼 읽힌다. 서울 교육감 후보가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그 흔한 홈페이지조차 유권자를 위해서 개설하지 않은 후보가 있는 걸 보면 공적인 약속(公約)이 빈 약속(空約) 같다.

전문가가 교육을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시민의 요구가 잘 반영되지도 않기 때문에 진영에 속해있는 명망가가 교육감 후보가 된다. 차라리 책임질 사람을 자치 단체장이 내세워 자신의 당선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면 학교에 더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다. 정당 공천을 통해서 시민의 입김도 반영되고 정치적 책임도 지도록 하는 게 지금처럼 깜깜이 공천과 무관심 선거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당이 공천한다면 보궐 선거를 치르게 한 책임이 있는 정당은 공천을 하지 않는 정도의 정치적 상식은 지켜질 것이다. 진영이나 정파는 그런 책임을 지지도 않고 질 방법도 없다. 책임질 수 없는 공직을 뽑는 선거는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그래야 어른들의 민주주의와 선거가 떳떳하다고 학생들에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책임지는 어른을 볼 수 있어야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할 것 같다.

조선일보

박대권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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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권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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