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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카스트라토 출간 표창원 "악당을 응징 못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내 소설의 탄생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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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용기·정의 거세한 이들 연쇄 효과는 일반인에게 이어져

어린시절 받은 학대·차별·무시 쓰레기로 쌓여 묻지마범죄 표출

인간이 어린 생명을 대상으로 범죄하는 만큼 큰 죄악은 없어

인생 후반기의 정체성은 소설가 다양한 현장 경험이 자양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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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 수정 부탁드립니다~~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인터뷰[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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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하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죠.”

최근 경기 수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에서 만난 표창원 작가는 자신의 장편소설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를 집필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창작의 세계,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될 수 있는 내 세계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표 작가는 <카스트라토> 출간 이전의 삶은 전반기, 출간 이후의 삶은 후반기라고 표현했다. 프로파일러, 경찰, 방송인, 정치인이란 그의 삶의 궤적은 작가가 되기 위한 여정이었다는 것이다. “인생 전반기에 실제 현장에서 부딪치며 겪었던 바탕은 작가가 되는 자양분이 됐다. 후반기 삶의 중심이 되는 정체성은 소설가다."

그는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어왔던, 더 이상 품고 없을 정도로 커진 ‘내 안의 이야기’를 소설로 세상에 꺼내놓았다. 그 거대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왜 그토록 커졌는지를 묻자,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얘기했다.

“악당을 응징하고 약자를 돕는 게 제일 멋져 보였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며 어려워졌다”며 그가 일선 경찰이던 1991년,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경찰서를 유유히 걸어나갔던 지역 유지 아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범죄자를 체포하지 못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다. 1980~90년대 일선 경찰 내부는 부정부패, 청탁, 부조리가 난무했다. 저항도 해봤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유학도 떠나고 교수, 국회의원도 해봤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사라지지 않았다.”현실의 ‘추상’…누가 거세당한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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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작가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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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카스트라토>를 썼다. 소설을 쓰다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쓰기를 반복했다. 당시 경찰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강의나 방송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가 소설에만 몰두하긴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도 터져, 백신, 사회적 격리 등을 반영해 소설을 다시 썼다. 하지만 출판사 요구로 코로나 내용을 삭제하며, 스토리 전체를 뜯어고쳤다.

그러나 ‘카스트라토’라는 제목은 끝까지 사수했다. 이 소설은 2023년 12월 어느 겨울, 세종문화회관 여자 화장실에서 잘린 고환이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제목 ‘카스트라토’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재미 차원의 주제라면, 부제 ‘누가 진정 거세당한 자인가’는 그 이상의 질문을 던진다.

“(카스트라토는) 스스로 인간성, 정의, 양심과 용기를 거세한 사람들을 상기시킨다. 현실과 타협하고 용기와 정의를 거세한 이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연쇄효과, 그 파장의 끝은 일반 시민의 억울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카스트라토>는 불편할 정도로 강한 기시감을 준다. 소설 속 사건은 이미 일어났거나, 지금 일어나고 있거나 혹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 같다. 표 작가는 “카스라토는 100% 허구”라면서 현실에서 관찰하고 느낀 것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나타낸 추상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들은 우리가 봤던 것들”이라면서도,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두고 이웃들이 그를 ‘착한 청년’이라고 평했듯 부정적 인물들을 단순히 악마로 그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봤을 법한 악한 존재들, 권력을 사유화해 사람들을 짓밟는 그 인물들이 최소한 자신의 좋은 점은 공적인 면에서 발휘해 주길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담았다.” "무질서, 어린시절 생겨"…쓰레기섬 만들지 말아야

<카스트라토>는 추리 소설이지만, 사람을 향한 애정이 담겨있다. 특히 책을 다 읽으면,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든다. 표 작가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어린 생명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고 학대하고 버리는 것만큼 큰 죄악은 없다”며 범죄자들과의 만남에서 어린 시절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접하는 범죄, 무질서 등은 모두 어린 시절에 생겨났다. 어린 시절 학대받거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이상한 방향으로 이를 풀어내는 것이다. 최소한 아이들을 망치지는 말아야 한다.”

기후변화로 전 세계 쓰레기가 모여드는 태평양의 한 섬처럼, 말과 행동의 쓰레기들이 쌓여 묻지마식 범죄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표 작가는 불특정 다수를 노린 범죄들을 거론하며 “(범죄자들을) 심층면담을 해보면, 살아오면서 받았던 말과 행동의 쓰레기들이 축적돼 있다. 학대, 차별, 무시 속에서 자라난 이들로, 죽지 못해 살다가 뭐하나 터뜨리고 가자는 생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설 속 주인공 이맥이 차별 속에서도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로 성장했다는 점을 통해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젠더갈등 등 뜨거운 이슈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부딪쳐봤다. 현실을 담담하게 반영하되 문제의식을 파헤치고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소설은 이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벌써 후속작을 집필 중이다. “아직 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소설이 나온 지금 후련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아쉬움은 다음 시리즈에서 극복할 생각이다."
아주경제=윤주혜 기자 jujusun@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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