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셰프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우산을 갖다주러 학교에 갔다가 우연히 채용 공고를 보고 급식조리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정년퇴임할 때까지 정성 어린 식단으로 아이들의 성장뿐 아니라 추억까지 책임졌다. 깐깐한 안성재 심사위원도 그의 음식을 한입 먹고는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 한국에서 보낸 짧은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김미령 셰프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시장에서 국수 장사를 시작한 어머니의 도움으로 성장했다. 어릴 때는 가난의 상징 같은 국수가 정말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마저 당뇨 합병증으로 쓰러지자 결국 자신도 국수를 삶게 됐다. 그리고 그는 인생 요리를 선보여야 하는 중요한 경연에서, 가족과 자신을 먹여 살린 그 소박한 국수를 내놓았다.
전업주부였던 이영숙 셰프는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난 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표고버섯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성공한 건 아니었다. 정성 들여 키운 버섯이 떨이로 팔리자, 남은 버섯을 활용해 요리 연구를 시작했다. 종갓집 종부였던 친정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운 것도 그를 ‘한식의 대가’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이 세 명의 셰프를 일부 출연진은 무심코 셰프가 아닌 ‘어머님’ ‘이모님’이라고 불렀다. 이는 지금도 급식조리실과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돌봄의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그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맛에 대한 취향이 다르기에, ‘최고의 요리’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궁극의 요리’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맛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바꾸고 지탱하는 음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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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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