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의 또다른 슈퍼마켓에서 삐삐 폭발이 일어 직원들이 대피하는 모습. 사진 CNN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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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현지시간) 레바논에서 발생한 무선호출기(삐삐) 폭발 사건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설계한 작전이라고 5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당시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주요 통신 수단인 삐삐가 폭발해 헤즈볼라의 장교 등 약 3000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민간인 사상자도 상당수 발생했다.
이스라엘·미국과 중동 관리들에 따르면 모사드는 현대판 ‘트로이 목마’로 불리는 ‘삐삐 폭탄’의 작전을 2022년에 처음 구상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촉발되기 1년 전이다.
모사드는 앞서 수년간 디지털 감시와 휴민트를 통해 레바논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침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로 인해 헤즈볼라는 일반 휴대전화조차 이스라엘의 감시망에 들어올 수 있다고 우려했고, 감청을 방지하기 위한 통신 장치를 찾아왔다.
모사드는 헤즈볼라가 이런 우려를 하지 않을 만한 장비를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두 가지 계략을 준비했다.
먼저 모사드는 지난 2015년 숨겨진 폭발물과 도청기 등이 포함된 무전기(워키토키)를 헤즈볼라가 구매하도록 유도했다. 모사드는 이 무전기를 통해선 헤즈볼라를 도청하는 것으로 만족했다고 한다.
이후 헤즈볼라가 구매하도록 모사드가 유도한 것이 이번에 폭발한 삐삐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대만 브랜드인 아폴로의 삐삐 AR924를 대량 구매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헤즈볼라는 당시 한 대만 회사의 중동 영업 담당자였던 여성으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헤즈볼라가 경계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별다른 관련성이 없는 대만의 브랜드를 내세운 것이다.
그런데 이 삐삐의 실제 생산은 아웃소싱 돼 이스라엘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헤즈볼라에 구매 제안을 한 여성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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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는 이 삐삐가 대형 배터리는 물론, 추적 위험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판단을 내리고 올해 2월 5000개를 구매해 배분했다.
AR924는 무게가 3온스(85g)도 되지 않지만, 여기엔 강력한 폭발물이 내장돼 있었다. 장치를 분해하더라도 사실상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물이 정교하게 숨겨져 있다고 관리들은 설명했다.
또 이 삐삐는 메시지를 읽기 위해선 양손을 이용해 두 개의 버튼을 누르도록 만들어졌다. 한 관리는 삐삐 사용자들이 양손을 다쳐 싸울 수 없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선출직 고위 공무원들은 지난달 12일까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헤즈볼라 대응 조치 논의를 위해 소집할 때까지 AR924에 대해 몰랐다고 한다.
이후 이스라엘 내부에선 헤즈볼라의 대규모 보복과 이란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삐삐를 폭발시키는 작전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전 수행을 통해 헤즈볼라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지만, 대규모 미사일 보복 공격과 이란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이스라엘 정보 당국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선기기 폭탄이 발견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가 승인하면서 지난 17일 무선호출기, 이튿날 무전기를 폭발시켰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통신망이 와해된 틈을 타 그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같은 달 27일 폭사시키고 사흘 뒤 레바논 남부에서 지상전에 나섰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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