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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프레시킬스, 쓰레기 매립지의 재야생화 [배정한의 토포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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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쓰레기 매립지 프레시킬스가 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자연의 자생력으로 새로운 생태계가 등장했다. 필드 오퍼레이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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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한 |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공원의 위로’ 저자



공원은 도시의 구원투수다. 위기에 처한 도시일수록 새로운 유형의 공원이 등판한다. 뉴욕 센트럴파크가 근대 도시의 열악한 노동과 위생 문제에 투약된 공간적 진통제였다면, 같은 도시 하이라인 공원은 세기말 자본주의 도시의 환부를 재생하는 외과수술이었다. 지금 우리의 시선을 초대하는 뉴욕의 공원 실험장은 50년 넘게 맨해튼의 욕망과 배설을 받아낸 거대한 쓰레기 산, 프레시킬스(Fresh Kills)다.



도시는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1790년 3만명 남짓하던 뉴욕 인구는 1900년 348만명으로 폭증했다. 다종의 생물이 서식하던 맨해튼의 원지형과 습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맨해튼 건너편의 스태튼 아일랜드는 수천년 전 빙하가 녹은 물이 자갈과 모래를 퇴적시켜 형성됐다. 섬 동부의 모래 언덕은 빗물을 프레시킬스의 낮은 습지대로 흘려보냈다. 프레시킬스는 네덜란드 출신 초기 정착민들이 ‘신선한 개울’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빙하 토양, 독특한 배수 패턴, 특별한 미기후가 결합된 프레시킬스는 생태적 다양성의 축복을 누렸다.



뉴욕의 탐욕은 광활한 미개발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성장주의 도시계획가 로버트 모지스는 1940년대까지 손상되지 않고 남은 생태학적 보물창고 프레시킬스에 맨해튼의 쓰레기를 채우기로 결정했다. 1948년 쓰레기 매립이 시작됐다. 1955년이 되자 프레시킬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매립지로 바뀌었다. 매일 쓰레기 3만톤이 폐기됐고, 평평한 염수 습지는 높이 70미터의 쓰레기 산맥으로 변했다. ‘어반 정글’의 저자 벤 윌슨은 “프레시킬스는 도시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악몽 같은 유적이 되었다”고 말한다. “도시는 맹렬한 식욕으로 자연을 삼키고 오염과 폐기물을 배설해서 강과 습지를 오염시키고 자연 서식지를 독성 매립지로 바꾼다.”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의 잔해를 실은 마지막 바지선이 2002년 3월 프레시킬스에 도착했다. 센트럴파크 세배 면적(2315에이커)의 초대형 쓰레기장을 공원으로 전환하는 장기 계획이 발표됐다. 지난해 10월, 2036년 완공을 목표로 단계별로 조성되고 있는 공원 중 북부 1단계 구역의 문이 열렸다.



세상의 모든 게 변할 것 같던 21세기의 새벽, 전세계 조경계는 프레시킬스 공원화 계획에 열광했다. 계획안은 도시에 버려진 광대한 탈산업 부지를 경관으로 치유하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설계공모 당선작 ‘라이프스케이프’(Lifescape)는 완결적 마스터플랜 대신 과정 중심적 단계별 계획을 지향하며 서로 충돌하는 환경 조건을 조율해 갔다. 20년이 흐른 지금, 프레시킬스 공원은 다시 우리의 주목을 초대한다. 인류세의 도시에서 공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공원과 도시 재야생화의 함수 관계를 질문하게 한다.



‘리와일딩’(rewilding)의 번역어인 ‘재야생화’는 훼손된 자연의 생태적 과정을 비인간 동식물의 자생력으로 활성화하는 전략이다. 인간의 통제와 관리를 통해 어떤 특정 시기의 생태계로 복원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알아서 갈 길을 가도록 돕는 방식이다. 과정을 존중하고 결과는 열어 둔다. 재야생화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같은 대규모 야생지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0년간 프레시킬스가 겪은 변화는 재야생화가 일상의 대도시에서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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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여름’을 기다리는 프레시킬스. “20세기의 환경운동은 ‘침묵의 봄’을 예견했다. 지구 생명의 파괴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 확실시되었다. 활생(재야생화)은 ‘소란한 여름’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적어도 세계의 일부에서는 파괴적 힘이 생성의 힘으로 변모한 희망 말이다.”(조지 몽비오). 필드 오퍼레이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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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의 공원 설계와 조성이 진행되는 동안 이미 프레시킬스는 자연의 놀라운 잠재력을 드러냈다. 유독성 쓰레기 더미 위에 새로운 생태계가 등장했다. 새로 난 풀밭에 새로운 미생물, 식물, 곤충, 조류, 포유동물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자연의 역동적 과정이 살아 있는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1억5천만톤의 쓰레기가 지표면 밑에서 서서히 분해되는 동안 악명 높은 쓰레기 산은 새로 정착한 야생 동식물의 안식처로, 시민을 환대하는 공원으로 계속 변해 갈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둔 건 아니다. 랜드스케이프가 아닌 ‘라이프스케이프’를 목표로 한 혁신적 조경설계, 마스터플랜이 아닌 과정적 계획이 재야생화를 한걸음 뒤에서 돕고 있다. 그다음 일은 인간의 설계와 조절 범위를 벗어난다. 앞으로 긴 세월 동안 프레시킬스는 공원의 새 거주자인 비인간 생명체들에 의해 복구되어 갈 것이다. 벤 윌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작업은 대부분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공원을 산책하는 것을 넘어 자연의 회복을 직접 경험하며 자연과 깊이 연결되는 감각, 생태 감수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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