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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남한 여성 연구자와 북한 여성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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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영 충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민교협 2.0)는 2021년 11월부터 온/오프라인과 전국 순회 방식으로 역사, 문학, 과학기술, 젠더, 환경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선정해 북토크를 진행해 왔습니다. '민교협의 북토크'는 전문화라는 미명하에 갈수록 고립의 길을 걷고 있는 지식 세계를 공공의 공간으로 불러내고, 이를 통해 공동체 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 참여와 연대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제 민교협은 북토크에서 지정토론자로 참여해 주신 분의 서평을 <프레시안>에 게재함으로써 그 성과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글을 매개로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해 어질게 됨을 돕는"(以文會友 以友輔仁)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는 '민교협의 북토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불과 몇 년전까지 남북화해 분위기가 한반도에 넘쳐흘렀는데, 이제는 해묵은 북한붕괴론, 흡수통일론이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한반도 정세가 얼마나 불안하고 쉽게 요동치는지를 알려주는 사례다. 그런 분위기의 변화와 함께 남북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냉엄한 국제정세의 변화도 있지만, 여전히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맹목과 무지가 남북 모두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꼭 남북의 지배세력, 집권층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나같은 보통 시민의 인식 수준도 다르지 않다. 오래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역으로 말하면 상대를 알지 못하면 상대를 정확히 볼 수 없다. 김성경 교수(이하 호칭 생략)의 독특한 북한 연구서인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하 <여자들>, 2023, 창비)은 그런 맹목 지점을 파고든다.

남한 사람들이 지닌 "북조선에 대한 적대감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거리감"(9면)의 표현이며, "북조선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은 남한사회의 역사적 중층성에 대한 무지"(9면)라는 문제의식을 이 책은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렇게 남북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은 서로 연결된다. 이 책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부제가 잘 표현한다. <여자들>은 분단의 나라, 그 중에서도 남한에서는 무지의 영역인 북한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양한 형식으로 탐구한다. (저자는 북한을 북조선이라고 칭하지만 나는 한반도 분단을 드러내는 의미에서 남한과 북한으로 표기한다)

<여자들>은 딱딱한 사회학적 연구서나 보고서가 아니다. 산문, 소설, 편지 등의 여러 글쓰기 형식에 기대어 북조선 여성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삶을 들여다보려 한다. 특히 "국가와 이데올로기라는 강건한 구조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만들어낸 북조선 여성들의 분투기"(246면)를 담으려고 한다. 이런 시각에는 자칫 사회과학적 연구가 빠질 수 있는 전체화의 오류, 즉 개별적이고 고유한 삶의 양상을 거칠게 하나의 틀 안에 밀어 넣으려는 연구방식과 거리를 두려는 문제의식이 도드라진다. 3부, 8개의 장으로 구성된 <여자들>은 마치 문학 작품이나 인물 르포르타쥬를 읽는 것처럼 구체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북조선 사회의 내면을 살펴 본다. 내가 주목한 몇 가지 지점을 중심으로 책의 의미를 짚어보고 떠오르는 질문을 적어보겠다.

프레시안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김성경 지음 ⓒ창비



<여자들>의 돋보이는 미덕은 북한 주민, 특히 북한 여성의 삶이 어떤지를 생생하게 포착한 점이다. 1장 '길건실-길확실'에서는 소위 천리마시대(1956~1972)를 대표하는 노동영웅 길확실의 수기를 해석한다. 저자는 북한 사회에서 자주 선전하는 노동영웅의 이면에 숨은 여성의 내면을 부각시킨다. "확실이라는 '대중영웅'은 김일성 시대부터 김정은 시대까지 미디어와 문학예술을 통해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보이며, 북조선에서는 그녀의 삶을 통해서 젊은 여성 노동자의 희생과 노동자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개조'해야 한다는 메시지"(54면)를 드러낸다. 겉으로 드러나는 서사에 매몰되지 않고 그 서사가 감추고 있는 다른 서사를 읽으려는 비판적 독법의 역할을 보여준다. 2장 '만자, 혜원'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의복공장을 세운 혜원이 화폐개혁으로 사업이 망하고 탈북하는 과정을 다룬다. 북한 사회에서 여성이 경제활동의 주역으로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는 사례를 실감나게 묘사한다. 3장 '수련'은 실제 사례가 아니라 영화를 다룬다. 영화 <한 녀학생의 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형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북한 여성의 전형성을 제시한다. 2부는 주로 북한과 중국 접경지역에서 저자가 취재한 북조선 여성, 조선족, 자이니찌(在日), 그리고 남한이 아니라 일본으로 간 탈북여성을 다룬다.

2부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점은 이들 여성이 처한 경계적 위치, 예컨대 "중국의 국가 정체성과 조선족이라는 민족 정체성 사이에서의 혼란"(128면)이며, 여성 정체성의 중층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연길 출신의 사업가 박사장과 그의 부인인 혜자, 조선족 대학원생 영철, 중년 여성 은정, 탈출한 북한 여성을 도우면서 "중국에서 결코 주눅 들지 않았던 순영 할머니"(153면), 한족 사업가의 식당 매니저로 일하는 옥경, 일본에서 남한의 고모를 찾는 재일 탈북 여성이 등장한다.

1부와 2부가 연구자로서 저자가 만났던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다면, 3부는 그런 여성들을 대하는 연구자이자 여성인 자신을 돌아보는 장이다. 나는 특히 연구자의 자의식과 성찰을 드러내는 3부를 흥미롭게 읽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 시어머니의 삶에 주목하고, 1부와 2부에서 다룬 북한 여성, 조선족 여성이 보여준 강인한 생활력에서 저자는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를 진솔하게 표현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 북조선 여성들은 시장으로 나섰고, 국경을 넘었으며, 불법적인 신분을 감내하면서도 악착같이 중국에서의 삶을 버텨내고 있다."(245면) <여성들>은 북한 여성이 삶을 꾸려가고 가족을 돌보는 각기 다른 방식을 보여 준다.

대부분의 남한 시민처럼 북한의 실상, 특히 중국, 한국, 일본으로 넘어간 탈북 여성의 생활을 잘 모르는 나에게는 저자가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개별 여성 인물의 모습이 강하게 각인된다. 해석 이전에 사실의 정보에서 얻는 인식의 충격이 일단 크다. <여성들>이 전달하는 사실의 힘이다. 예컨대 1장에 나오는, 한국전쟁을 대하는 북한 주민의 공포감은 북한 내부의 시각에서 전쟁이 어떻게 비쳤는지를 보여준다. 남이든 북이든 전쟁은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연구에서 일차적으로 내재적인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북한에서 자본주의적 요소가 확산하면서 전주, 물주가 등장하는 상황, 사업을 위한 뇌물 제공(67면)도 잘 몰랐던 정보다. 한국 언론에서 간헐적으로 보도했던 사안이 책을 읽으면 명료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런 정보와 관련한 저자의 판단과 해석에 의문이 드는 점도 있다. 예컨대 이런 설명. "북조선의 경제는 이제 시장 없이는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공식 경제에는 남성들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면 시장과 같은 상업활동이나 비공식 경제에는 여성, 그중에서도 결혼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시장이 점차 중요해지자 북조선의 상층부는 이를 규율할 필요성에 직면했다."(77면) 저자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이런저런 언론 보도를 통해 북한에서도 시장경제가 퍼지고 있다는 점은 나도 알고 있다. 문외한으로서 갖게 되는 질문이지만, 북한 경제가 정말 시장 없이는 작동 불가능한 상태인가? 이런 서술은 현 단계 북한의 실상에 부합하나?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북한 여성의 역할(82면)에 관한 서술도 역시 사실에 부합하는가?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저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궁금증이 생긴다.

북한 사람을 대하는 연길 조선인의 태도(123면), 그리고 탈북해서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도 미처 몰랐던 내용이다. "이들이 일본에 체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대부분이 북송사업으로 북조선으로 이주한 자이니치와 일본인의 2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일본에 남겨진 가족이나 친척들이 확인해줘야만 일본에 체류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195면). 나는 <여자들>을 읽으면서 탈북민 중에는 남한이 아니라 일본을 정착지로 선택한 예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들이 "자이니치와 일본인의 2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들이 굳이 일본을 택한 전적인 이유인지는 의문이 든다. 혹시 남한에서 탈북자를 대하는 태도를 알기에 일본으로 넘어간 것은 아닐까? 탈북민의 이야기를 다룬 조해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의 주인공이 유럽으로 넘어간 것처럼. 앞서 지적했듯이, 이 책을 통해 북한, 연변, 한국, 일본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탈북 여성들의 경험을 알게 된 건 의미 있다. 그런데 북한 여성도 계층적, 계급적으로 차이가 있다면, 이 책에서 다룬 여성들은 어디에 속하나?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탈북 여성을 손쉽게 범주화하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최대한 신중하게 그런 범주화를 경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가 선택한 개별 여성이 지닌 대표성을 고려할 때 그런 범주화의 함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문학 연구자이자 평론가로서 나는 책의 서술방식과 관련해 이런 질문을 한다. <여성들>이 채택한 서술방법에서 쟁점이 되는 사실의 재현과 해석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글은 길확실이 쓴 <천리마 작업반장의 수기>(평양: 직업동맹출판사 1961)와 천리마 시대를 다룬 북조선의 영화 및 소설 등의 내용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이다."(54면) 사실(fact)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 해석과 분리된 사실이 가능한가? 종종 저자는 그런 분리가 가능한 것처럼 서술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저자도 경계하듯이 사실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재해석"할 때의 위험성은 없는가? 국가 이데올로기와 여성 노동자의 의식을 설명하면서, 공산주의, 국가, 수령을 대하는 여성들의 거리를 설명할 때(45면), 그것은 저자의 해석인가? 아니면 인터뷰나 텍스트에 나온 실제 북한 여성의 발언인가? 서술방법론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뾰족하게 드러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한 예를 더 들자면 "이번 장에서는 <한 녀학생의 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서사를 재구성했다. (중략) 2020년부터 2022년 사이에 필자가 진행한 복수의 북조선 출신 남성 및 여성과의 심층 면접 내용에 기반을 두고 서사적 상상력을 덧붙였다."(111면)는 설명이 나오는데, 인터뷰 내용을 전달하는 것과 저자가 덧붙인 서사적 상상력의 관계는 무엇인가? 달리 묻자면 면접 내용과 소설, 영화와 같은 허구적 서사(fiction)를 같은 층위에서 다룰 수 있는가?

앞서 지적했지만 연구대상을 대하는 연구자의 자리, 혹은 위치성을 고민하는 3부를 인상 깊게 읽었다. 통상적인 사회학적 현장조사연구에서는 보기 드문 시각이다. "또한 남한 출신 연구자가 북조선 출신 여성에 대한 지식을 생산한다면 그것은 연구자의 위치성과 그것의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결국 연구자인 '나'는 연구 참여자인 북조선 여성을 타자화할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237면) 연구자가 연구대상을 "타자화할 가능성"은 모든 연구에 잠복해 있지만,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 연구자가 "북조선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훨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연구 주체와 연구대상의 거리를 함부로 좁힐 수는 없다면, 할 수 있는 건 대상을 대하는 연구 주체인 '나'의 위치를 신중하게 사유하는 것이다. "이렇듯 나의 북조선 출신자 연구는 단순히 그들의 삶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연구자인 내가 그들을 만나면서 마주하는 심적 요동을 성찰적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238면) 저자가 피력하는 연구자와 다른 상황에 놓인 대상을 연구할 때의 어려움과 위험성을 읽으면서 제 3세계 여성을 1세계 페미니스트 연구자가 다룰 때 필요한 태도로 탈식민주의 비평가인 스피벅(G.Spivak)이 조언했던 경청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연구방법론으로서 불가피하게 택한 걸 이해할 수 있지만, 혹시 <여성들>도 북한 여성의 삶을 여성주의적 틀에서 단정하는 위험은 없는가? 몇 가지 떠오르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여성들>은 연구대상이나 관점에서 보기 드문 미덕을 지닌 책이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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