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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좀비 대학' '묻지 마 도산' 키우는 정부·지자체[변기용의 교육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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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즈·글로컬대학 탈락 대학 대책 전혀 없어

최소한의 의지·역량 있는 대학 지원전략 필요

[편집자주] 필자는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후 경북대 교무과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정책 기획 부서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정책을 입안했다. 2002년부터 3년간 OECD 교육국(프랑스 파리)에서 상근 컨설턴트로 국제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했다. 2008년에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근거이론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뉴스1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고등교육 부분 개혁을 위해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 정책은 누가 뭐래도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라이즈) 도입과 '글로컬대학 30' 사업이다.

2023년부터 추진 중인 글로컬대학 사업은 2026년까지 혁신적 교육 모델을 제안하는 30개 대학을 선정해 지역 발전의 거점을 만든다는 것이 목표다. 교육부가 주관하던 다양한 대학 재정지원 사업을 통합해 지자체가 지역의 실정에 맞는 사업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대학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라이즈 사업도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선택과 집중' 패러다임, 구조개혁기 대학현실 반영 못 해

이 2개 사업의 기저에는 잘하는 대학을 더욱 잘하게 지원하자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깔려 있다. 잘하는 대학을 집중적으로 밀어줘서 지역 발전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 지역과 지역 대학이 당면한 문제의 복잡성을 생각할 때 이런 단순한 정책만으로 문제점이 해소될 수 있을까. 1990년대 고등교육이 잘 운영되던 시기에 통용되던 선택과 집중이라는 패러다임'만'으로는, 대학 구조개혁기에 접어든 우리 고등교육 체제의 엄혹하고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현재 교육부 글로컬대학 사업이나 지자체가 계획하고 있는 라이즈 재정지원사업에서는 "선정되지 못한 대학"에 대한 대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이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①생 불가능한 대학은 '사립대학 구조개선법 제정'을 통해 자율적 해산을 유도한다, ②라이즈 체계 도입 후에는 지자체에 이 역할을 맡긴다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현재 이 두 가지 정책적 방향 모두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중한 내 자산"…부실·한계대학일수록 쉽게 문 안 닫아

먼저 사립대학 구조개선법 제정은 여야 간 대치가 계속되는 비우호적인 입법 환경 때문에 논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립대학 설립자와 그 후손들은, 법령상의 규정과는 관계없이 자신들이 설립한 대학을 '소중한 내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퇴출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을 해 주지 않는 한 쉽게 대학 문을 닫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제안된 법안에서는 '학교법인 해산 시 잔여재산을 설립자가 운영하는 공익법인 등으로 출연'할 수 있게 한다거나, '해산장려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부실·한계대학의 퇴출을 유도하는 중요한 유인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야 의원들 간 '사립대학의 공공성'에 대한 기본적 생각 차이 때문에 합의가 쉽지 않다.

따라서 부실·한계 대학의 퇴출이 적기에 질서 있게 이뤄지지 못하고, 재정난이 악화할수록 소위 '좀비 대학'으로 바뀌어 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즉 시설을 고치지 않거나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줄이고, 그도 안 되면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학위 장사를 하며 버티다가, 종국에는 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교직원에게 기부를 받는 형식으로 임금을 체불하며 버틸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재정이 견실한 대학 법인들은 적자가 누적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스스로 문을 닫고 나갈 수도 있겠으나, 현행 제도하에서는 청산 후 설립자가 가져갈 것이 적은 한계·부실대학일수록 스스로 문을 닫고 나갈 유인은 더욱 작아진다. 그렇다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정부가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 한계·부실대학을 퇴출할 수 있는 마땅한 정책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자체도 대책 없어…3~4년 뒤 '좀비대학' 출현 가능성 커

라이즈 체계 도입 이후 지역에서 대학 육성과 지원 역할을 본격적으로 담당하게 될 지자체가 세운 계획을 살펴봐도 한계·부실대학에 대한 대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2025년부터 시행될 '시도별 라이즈 기본계획(안)'을 분석해 보면, 지역에서 가장 큰 현안 중 하나인 한계·부실 대학에 대해 어떤 조처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지자체는 한 곳도 없다.

유권자의 표에 민감한 선출직 지자체장의 속성으로 볼 때,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계·부실대학 정리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지자체가 담당할 가능성은 당초부터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서 관련 권한을 명확히 이양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처럼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미루고 한계·부실대학에 대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3~4년 이후에는 소위 '좀비대학'의 출현과 '묻지 마' 파산이 연이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무책임한 파산의 경우 질서 있는 퇴출의 경우에 비해 교직원에 대한 체불 임금 보전율이 매우 낮아져 사회적으로도 피해가 커진다. 이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학교의 폐교로 인해 지역 주민과 상권이 입을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소위 '잘 나가는 대학'들에 대한 지원뿐만이 아니라 '한계·부실대학들' 혹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큰 대학들에 대한 보다 정교하고 타당한 전략 마련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학 자구 노력, 운영 비용 절감 지원 정책 함께 추진해야

대안은 무엇일까. 필자는 현재 정부·지자체 담당자에게 만연해 있는 '선정되지 못한 대학의 경우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참으로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폐교는 대학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의지와 역량이 있는 지역 대학들의 경우 ①대학 자체적인 규모 축소와 특성화 노력 등 자구노력과 함께 ②정부·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비용 절감 지원 정책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경쟁력이 부족한 지역 중소규모 대학들의 경우 특성화된 전공 교과목만 제공하도록 하고, 기초 교양교과목과 비교과 프로그램들은 라이즈 체계 내의 지역 거점대학이나 혹은 지자체가 운영 주체가 되는 일종의 '공공형 교양기초대학'을 설립해 이들로 하여금 공유 교육과정, 공유 강사, 공유 시설을 제공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역 중소규모 대학으로서는 학교 운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탈락한 대학도 '마중물 펀드'…개혁 역량 키울 기회 줘야

이와 함께 라이즈 재정지원사업의 경우에도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제한된 우수대학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대학이 변화에 대한 의지와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마중물 펀드'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당초 특정 사업에 10개 대학만 선정할 계획이었다면 탈락한 대학 중 5개 대학을 추가로 선정하되 지원금액은 선정대학 지원액의 10~20% 정도만 지원하면서 이 기간에 개별 대학이 자구 노력을 통해 개혁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이나 대학이나 희망과 비전이 있는 곳에 노력과 의지가 생겨나는 법이다. 몇 개의 부실·한계 대학이라도 이를 통해 회생시킬 수 있다면 지역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부담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구축된 지역 내 고등교육 지원 인프라를 기초로, 지역 내 대학 간 역할 분담과 연계·협력을 통해 대학 구조개혁의 큰 그림을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지역 내 건전한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한계·부실 대학 퇴출은 그것대로 추진돼야 한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 모두 새롭게 도입되는 라이즈 체계 하에서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연착륙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 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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