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1969년 10월∼1974년 5월 재임). 동독 등 공산주의 국가들과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동방정책을 펼쳤으며 그 공로로 197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SNS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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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불과 열흘도 안 지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동·서독 분단과 동서 냉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베를린장벽이 1989년 11월9일 갑자기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는 동독 정부가 동베를린 시민들의 서베를린 여행 자유화 방침을 발표하며 구체적 시점을 못박지 않은 ‘실수’에서 비롯했다. 지금 당장 서베를린에 갈 수 있게 됐다고 여긴 동독인들은 앞다퉈 장벽을 통과했다. 당황한 동독 측 경비병들은 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수수방관했다. 동·서독 주민들이 장벽 위로 올라가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는 광경만으로 장벽 붕괴는 기정사실이 됐다. 결론적으로 브란트의 예측은 틀리고 말았다. 국내 대표적 독일 전문가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저서에서 이 장면을 묘사하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인간의 논리를 뛰어넘는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서독은 기가 막힐 정도로 운이 좋았다. 동독 공산주의 정권을 지탱할 힘을 가진 국가는 소련(현 러시아)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소련은 미국과의 핵군비 경쟁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쏟아부은 나머지 국고가 텅 비는 등 경제가 사실상 거덜나 있었다. 소련이 살아 남으려면 세계 3위 경제대국 서독의 원조를 받는 길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결과로 분단된 독일은 4대 승전국 가운데 하나인 소련이 반대하는 한 통일은 영영 불가능한 상태였다. 소련이 서독과의 협력 확대를 위해 찬성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동독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다른 승전국들 중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프랑스 역시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동·서독은 분단 45년 만에 통일을 이뤄냈다. 1990년 10월3일의 일이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3일(현지시간) 독일 통일 34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옛 동독 지역의 경제적 낙후 등을 들어 “독일 통일은 34년이 지난 지금도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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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독일 통일 34주년을 맞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올라프 숄츠 총리 등 요인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했다. 올해 행사는 특별히 수도 베를린이 아닌 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州) 슈베린에서 열렸다. 동서 분단 시절 동독에 속한 곳이다. 통일 후 꽤 시간이 흘렀으나 옛 동독 지역은 경제적으로 여전히 낙후하고 옛 서독 주민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를 의식한 듯 숄츠 총리는 연설에서 “독일 통일은 34년이 지난 지금도 완성되지 않았다”며 “동부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렇더라도 ‘남북 통일을 포기한 채 그냥 남남으로 살자’라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되는 작금의 한국 상황보다는 훨씬 나은 듯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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