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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인권·방통위 부적격 인사 반복…“국회 추천이 되레 악의 근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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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관·위원회 정치권 추천으로 잇단 잡음

경향신문

지난 9월 26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한석훈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이 부결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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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지난 9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는 안창호 위원장이 처음으로 주재하는 전원위원회가 열렸다. ‘2023년 인권상황보고서’ 발간을 놓고 찬반 갈등이 있는 터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손팻말을 들고 회의 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날 전원위는 표결 끝에 비공개로 진행됐고, 보고서 발간에 대해서는 결국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안 위원장은 임명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으로부터 부적격 인사라는 반대에 부딪혔다. 안 위원장은 창조론 교육 주장 같은 종교적 편향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차별금지법 도입을 놓고도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월 6일 안 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인권위 내부의 반인권적 인사는 안 위원장뿐만이 아니다. 김용원 위원은 회의 방청 인사들에게 “인권 장사치들”이라는 막말을 했고, 이충상 위원은 “기저귀를 차고 사는 게이”라는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반인권적 발언만 보더라도 인권위의 목적을 규정한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라는 인권위법 제1조 조항이 무색해진다.

한석훈 인권위원 후보자 국회서 부결

지난 9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야당 추천 인권위원 후보자(이숙진)의 선출안이 가결됐으나, 여당 추천 후보자(한석훈) 선출안은 부결됐다. 표결 결과 재석의원 298명 가운데 찬성 119명, 반대 173명, 무효 6명으로 과반이 되지 못했다. 뜻밖의 상황이었다. 한 위원과 함께 인권위에서 활동했던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위원의 정치편향적 발언과 반인권 행보를 민주당 의총에서 강하게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양당이 공히 선출하는 것으로 합의했다”며 ‘사기꾼’이라고 민주당을 탓했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 부대표는 “윤석열 정권의 잘못된 인사에 대해서는 국회가 당연히 견제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이숙진 후보를 임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국회에서 추천된 방통위원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민주당이 한석훈 추천 합의를 어긴 것이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임명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이 여당 추천 후보 선출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줘야 인권위원 후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관련 상임위나 원내 지도부가 사전에 부적격 여부를 꼼꼼하게 챙겼어야 했다”면서 “여야 간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고 말했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정치평론가)는 “만약 부적격 인사라면 국회 본회의가 아니라 여야 원내지도부의 협의 과정에서 걸러졌어야 했다”며 “여야 신뢰 회복이 없는 한 인권위의 상황도 나아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아예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윤 대통령이 추천한 인사로만 구성돼 전횡을 일삼던 ‘2인 방통위’는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 통과로 이진숙 위원장의 업무가 정지되면서 사실상 기능이 마비돼버렸다. 이 가운데 민주당은 위원 추천 과정을 잠정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국회 선출 협상도 지지부진하면서 이 위원장의 탄핵 심판과 방통위 정상화는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민주당은 여당 우위의 방통위 자체를 신뢰하지 않음에 따라 비정상화를 방치하고 있고, 여당 역시 이런 야당과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이 상황을 그냥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야당의 반대에도 이동관·김홍일 전 위원장과 이진숙 위원장 임명을 잇달아 강행하면서 방통위에서는 파행이 일상화됐다. 이동관 전 위원장과 이진숙 위원장은 과거 언론 독립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한 인물이고, 김 전 위원장은 방송 문외한이었다. 부적격 인사가 겉으로는 방송의 독립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상황이 이어졌다.

국회가 임명 동의·승인·선출·위촉·추천·지명하는 주요 공직은 100명을 넘어선다.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 위원, 인권위 위원 등에 대해 임명 동의하거나 선출한다. 또 국민권익위, 방송통신위,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신문윤리위 등의 일부 위원에 대해서도 국회 추천권이 있다. 국회의장의 지명권이나 추천권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인사가 국회를 통해 추천, 발탁된다.

“전문가·시민단체가 추천해야” 주장 제기

국회에 부여된 주요 인사 추천권의 근거는 국회의 대의기관적 성격과 국민적 신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여야 정쟁이 윤석열 정부 들어 격화되면서 윤 대통령이 추천한 인사는 물론, 국회 추천 인사들까지 여야 정쟁에 동원된 상태다. 통상 여야의 상임위원장이나 간사가 관련 인사를 추천하면 여야 원내 지도부가 이를 수용해 후보자를 지명하고 당대표가 추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야는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하는 인사보다는 자당의 주장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인사를 원한다. 그 때문에 인권위와 방통위처럼 국회 추천 인사가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관이나 위원회에 들어가 새로운 정쟁을 일삼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의회가 기본적으로 갈등 해소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의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의회라는 전쟁터에서 각 당의 입맛에 맞는 ‘전사’를 추천하기 때문에 오히려 국회 추천이 악의 근원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회 추천 인사 대신 관련 전문가나 시민단체 추천 인사들로 이들 정치 독립적 기관과 위원회를 채우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 평론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국회의 갈등 해소 능력보다 전문가들의 도덕성을 오히려 믿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관계자는 “주요 인사의 추천권을 민간단체에 맡긴다면 신뢰를 담보할 수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헌법과 법률 등에서 국회가 주요 인사를 추천하도록 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여야 정쟁을 조장하는 윤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김 교수는 “진보성향의 인사들이 가야 하는 인권위원장이나 노동부 장관 등에 우파 쪽 인사를 지명한 것을 보면 윤 대통령의 우향우 전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일 평론가는 “국회 이전에 윤 대통령부터 적격 인사를 추천해야 위원회 인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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