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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알바하면서 실업급여 184만원씩 꼬박 챙겼다”…대한민국서 가장 눈 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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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안되는 편법·부정수급

구직활동 요건 채우기 위해
자격증 없이 간호조무사 지원
위조 면접확인서 제출하기도

부정수급 매년 껑충 뛰는데
환수율 올해 80% 못미칠듯

“고용센터 모니터링 인력 강화”


매일경제

서울의 한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시민이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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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실직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된 실업급여가 ‘눈먼 돈’ 취급을 받고 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재취업 노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허위가 판치고, 심지어는 취업 상태이면서도 이를 속여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도 있다.

4일 매일경제 취재에 따르면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A씨는 모 안과에 간호조무사로 취업을 하겠다고 고용노동부 취업포털 워크넷을 통해 신청했다. 하지만 A씨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없을 뿐더러 그의 취업희망 직종은 매장 계산원이나 사무원이었다. 고용센터는 A씨가 실제로 취업 의사가 없음에도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구직활동 요건을 채우기 위해 형식적 취업활동을 한 것으로 보고 그에게 경고 조치를 했다.

이처럼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부 실업급여 수급자들은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제출자료를 위조하기까지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수급자 B씨는 고용센터에 모 자동차부품 회사 단순직에 입사지원했다며 위조된 면접확인서를 제출했다. 고용센터는 면접사실 확인서의 인사담당자 서명란 필체가 B씨의 자필 서명과 유사한 것이 수상하다고 여겨 사업장에 입사지원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해당 서류는 위조한 것으로 판단돼 해당 실업급여를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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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위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하지도 않은 취업활동을 허위로 보고하는 경우는 훨씬 흔하다. 수급자 C씨는 모 기업에 경리보조로 입사지원했다며 고용센터에 해당 회사 명함을 제출했다. 하지만 고용센터 실업인정 담당자가 사업장에 전화해 확인한 결과 해당 기업은 현재 사무보조 채용계획이 없었다. 해당 기업 측은 “C씨에게는 나중에 필요하면 연락주겠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고용센터는 C씨가 실제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채 명함만 받아 제출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에게 경고 조치를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구직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실업급여를 받아서 경고를 받은 사례가 2022년에는 1024건이었지만 올해는 7월까지 5만5849건이나 된다. 하지만 급여 정지를 한 경우는 512건에 그친다.

취업을 하면서도 실업급여를 더 타내기 위해 사업주와 공모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신촌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D씨는 최근 카운터에서 일을 볼 직원을 뽑는 과정에서 “고용보험 신청을 안하는 조건으로 일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알고보니 해당 지원자는 다른 직장을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D씨는 “고용보험을 안내면 우리 입장에서도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득”이라며 “하지만 나중에 이 직원이 본인의 탈법행위를 도왔다는 이유로 협박을 해올 수도 있어 채용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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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교육 자료를 한 시민이 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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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소기업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코드 23번에 있다”고 했다. 경영상 필요한 인력감축을 뜻하는 코드다. 사업주가 이 코드로 퇴직 처리를 해주면 실업급여 수급이 가장 쉬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자발적 퇴직자 중 상당수가 23번 코드 처리를 사업주에게 요구하고 있다.

인천 계양에서 중소 서비스업체에 사무직으로 2년간 재직했던 E씨는 자발적 퇴사를 결정했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E씨가 하던 일을 외부에서 잠깐 봐주는 대가로 퇴사코드 23(권고사직)을 받는 데 성공했다. E씨는 실업급여로 184만원씩 3개월을 받았고, 추후 조기 재취업했다가 1년 있다 다시 퇴사해 나머지 실업급여도 받아서 750만~800만원을 챙겼다. E씨는 “실업급여를 타먹는 동안 차명으로 알바도 이것저것 다 했다”며 “중소기업중에서 악질적인 곳들은 다들 이렇게 취업 안하고 많이 한다”고 귀띔했다.

한 노무법인 관계자는 “퇴직자가 23번 코드를 요구할 때 사업주가 굳이 안 들어줄 이유도 없다”며 “문제 있는 직원을 그냥 두고 월급을 주는 23번을 입력하고 내보는게 훨씬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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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실업급여 부정수급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부정수급액을 정부가 되찾아오는 환수율은 최근 6년간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부정수급액 환수율은 2019년 90.5%에서 지난해 81.4%로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렸다. 올해 연말에는 80%선도 위태한 상황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업급여 부정사례를 보면 대개 지방의 중소기업들과 그 소속 근로자들에게서 발생한다”며 “행정당국이 엄격하게 부정수급 건을 찾아 내고 재발을 막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부정수급이 확인된 경우 반환명령을 하고 3년내 환수를 추진한다. 3년 이내에 환수가 되지 않으면 국세 추징 절차에 준해 부정수급자의 재산을 조회해 압류·공매 처분 절차를 밟는다.

고용부 관계자는 그러나 “실업급여는 부정수급액이 증가하는 시기에 오히려 환수율은 떨어질 수 있다”며 “환수 절차가 3년간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윤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직급여는 중요한 사회안전망이지만 도덕적 해이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제도이기도 하다”며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고용센터의 인력 증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직급여 수혜자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와 적극적 구직활동 유도가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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