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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기고]'두텁고 촘촘하게'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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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9차 본회의에서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전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재의의 건이 부결되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퇴장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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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방송4법'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과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 계조정법개정안)을 재의결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국회에 돌아온 법안이 다시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의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지만 이 벽을 넘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중 서민 가계의 소득 증대와 관련해 단연 눈에 띄는 법안은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 이다. 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들의 삶이 되어야 하고, 그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의 삶이어야 하는데, 이 법안이 발의되기 이전부터 반대만을 위한 논리와 언어들이 동원되는 것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어려운 분들을 두텁고 촘촘하게 지원하겠 다"는 말을 전매특허처럼 사용해 왔다. 이는 야당인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기본소득과 함께 추진해온 보편적복지에 대해 반대편에 서겠다는 명확한 의사표현의 수단이었다. 이후 "두텁고 촘촘하게"라는 표현은 윤석열 정부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중앙일보는 2023년 7월 31일자 기사에서 <보건복지부가 28일 73개 복지의 선정 잣대인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을 6.09% 올렸다. 생계급여 기준선도 7년 만에 2%p 올렸다. 이 덕분에 159만명의 기초수급자의 생계비가 일제히 큰 폭으로 오르고, 기준선 언저리에서 탈락한 10만명의 극빈층이 새로 기초 수급자가 된다.> <문재인 정부(2017~2022년) 5년 동안 8만7565원 늘었는 데, 이번 정부는 1년 만에 더 많이 늘렸다. 한 방에 5년 치를 추월했다.>고 윤석열 정부를 추켜세우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약계층에게 현금 복지를 두텁고 촘촘하게 지원하고, 보편적 복지는 사회서비스 고도화로 풀어나간다는 윤석열 정부의 약자복지 정책에 따라 기준중위소득을 역대 최고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사회보장전략회의에서 "현금 복지는 선별복지, 약자 복지로 해야지 보편 복지로 하면 안 된다"며 "현금 복지는 정말 사회적 최약자를 중심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가 이번 인상으로 이어졌다.>라고 보도했다.

물론 그나마 수급비를 올린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율을 비교하면 그리 자랑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수급자들에게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한번 수급자가 되면 헤어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근로를 통해 소득이 발생하면 그만큼 수급액이 깎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폐지 줍는 노인들이 그토록 많은 것이다. 단돈 몇천원에서 1만원 정도이지만 현금으로 받고 소득신고가 되지 않아 수급액이 깎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수급자가 되면 소득분위 최하위의 빈민을 벗어날 수 없기에, 수급비 인상과 더불어 보다 궁극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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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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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대량 폐업과 파산이 문제 되자, 윤석열 정부는 어려운 계층에게 "두텁고 촘촘하게" 지원하겠다며 지원규모 25조원의 소상공인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순수 재정지출은 1조원 수준이고, 나머지는 모두 대출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윤석열정부는 수급비 인상 예산의 수십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각 종 부자감세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 결과 윤석열정부 임기 5년 동안 국세수입은 1916조원 걷힐 것으로 전망되었고, 이는 지난 2022년 8월 '2023년도 예산안' 발표 당시 기재부가 밝혔던 국세수입 전망치 2200조원 대비 284조원 줄어든 수준이다. 이에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은 지난달 "부자감세와 내수부진 고착화에 따라 쓰려고 예상한 돈 284조원이 증발하는 것으로, 연간 57조원 가량의 쓸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두텁고 촘촘하게"는 "죽지 않을 만큼만 지원하겠다"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인 것이다.

보편적복지를 향해 한걸음씩이라도 나아가야 한다. 가계소득은 일하여 얻은 근로소득이나 사업을 하여 얻은 사업소득, 집세, 토지세, 이자, 배당금 따위의 재산소득 등이 합쳐진 구조로 형성된다. 이중 서민들에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근로소득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는 각국의 분쟁, 기후 재난 등으로 폭등하는 해외 원자재 물가와 1달러당 1400원에 육박하는 고환율로 내수시장이 엄청난 물가상승을 기록하고 있고,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서민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와 내수시장 침체 등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민 가계의 실질소득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내수시장이 활성화되는 선순환의 대책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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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가계의 대표적 소득인 근로소득이 실질적 소득감소를 막지 못하는 한계상황이라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기본소득"이든 "민생지원금"이든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부조 성격의 이전소득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회 부조 성격의 "민생지원금"을 지역 화폐나 상품권 형태로 지급해 모두 사용하게 하면 '승수 효과'로 인해 얼어붙은 내수시장에 군불을 지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기본소득"이든 "민생지원금"이든 명칭에 얽매이지 말고 가능한 재정 범위 내에서 보편적복지를 향해 하나씩 실행해 가야 한다.

끝으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윤 정부는 수급비를 인상한 덕분에 159만명의 기초수급자의 생계비가 일제히 큰 폭으로 오르고, 기준선 언저리에서 탈락한 10만명의 극빈층이 새로 기초수급자가 된다며 자화자찬 하였다.

하지만 내수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서민 가계의 실질소득이 지속적인 하향 곡선을 그리도록 내버려 둔다면,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 10만명이 아니라 그 몇 십배의 수급자를 더 낳게 될 수 있음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보편적복지 정책은 복지를 넘어선 경제정책이고, 경제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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