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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데스크 칼럼] 두더지 잡기식 정부 가격 개입 멈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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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2일 한 방송에서 “두더지 잡기라는 지적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발언했다. 두더지 잡기는 1970년대 일본에서 만든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여러 구멍 중 하나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두더지를 망치로 때려 득점한다. 특정 품목의 물가가 튀어 올라 이를 급히 억제했음에도 다른 품목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뜻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송 장관이 품목별 물가 상승에 정부가 일일이 개입한 상황에 대해 이같이 사과한 것이다. 올해 초 사과값이 올랐다가 최근에는 배추와 깻잎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상태다.

두더지 잡기는 유통업계 곳곳에 있다. 정부가 지난 6월 밀가루값 잡기에 나서는 등 압박을 이어가자 라면업계는 가격을 인하했다. 하지만 동시에 치즈·아이스크림 등 유제품과 수입 맥주 가격이 오르면서 정부 물가 대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밀가루와 설탕도 원재료 가격이 상승했지만 정부 압박에 관련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오히려 내렸다. 코코아·올리브·커피 등의 상황도 비슷했다. 오는 7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도 그렇다. 많은 식품 기업 중 오뚜기만 제품 가격 이슈로 국감 증인으로 신청됐다. 업계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오뚜기가 두더지가 된 셈이다.

정부의 시장 가격 개입이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느냐는 정답이 없다. 다만 반복적이고 산발적인 정부의 시장 개입에 따라 억지로 가격을 내린 기업들의 불만은 많다. 원재료 가격 인상 등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외생 변수에 따라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외생 변수를 어찌할 수 없다면 나라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유통 구조 개선에는 사실상 손을 뗀 상황이다. 여당 대표는 올해 추석 명절에 “유통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명절 헛구호에 그친 경우가 대다수다.

식품 물가는 한번 오르면 원재료 가격이 하락해도 내려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주요 과일과 채솟값은 1년 새 20% 이상 치솟았다. 수입 원자재를 쓰는 가공식품 상황도 비슷하다. 최근 발표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6%에 그쳐 3년 6개월 만에 1%대로 진입했다. 그러나 물가가 안정됐다고 하는 정부 발표는 대다수 국민에겐 매우 낯설게 들린다. 예고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후 시중에 돈이 풀리면 물가는 다시 오를 가능성이 있다.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우려도 크다. 한 달여 남은 미국 대선도 세계 경제를 뒤흔들 빅이슈다.

정부가 서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하지만 두더지 잡기식 가격 통제는 단기적으론 통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억지로 누른 가격이 한꺼번에 급상승할 수 있다. 정부가 기업에 과도하게 가격을 낮추라고 압박하면 슈링크플레이션(제품 가격을 고정한 채 용량을 줄이는 것)이나 품질 저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근본적인 해법을 더 고민해야 한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이상기온으로 해마다 반복되는 원재료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두더지 잡기식 대책은 곤란하다.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유통 개혁과 기후변화 대비책이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 김영삼 정부 후 유통 혁신을 제대로 시도라도 한 정부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근시안적인 대증요법의 부작용은 역사가 증명한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8년 당시 물가상승률이 4.7%에 이르자 서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생활필수품 52개를 찍어 특별 관리했다. 협조하지 않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도 불사했다. 서민을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런데도 결론은 실패였다.

김문관 생활경제부장(moooonkw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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