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9 (일)

“구닥다리 소방환경, 희생자가 나와야 바뀌었다”…19년차 현직 소방관의 충격고백 [Books]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열폭주 공포
새로운 화재 유형 등장에
서화약제 개발 다급해져


매일경제

소방의 역사


소방의 역사, 송병준 지음, 부키 펴냄, 3만5000원

19년 차 현직 소방관이 화재와 소방의 역사를 집대성했다. 736쪽 분량의 책에서 인류와 불의 역사부터 시작해 불을 끄는 소화약제와 기구, 소방차와 스프링클러의 기원과 작동 원리, 경보·피난 설비, 소방 조직과 소방관의 삶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다룬다. 화재로부터 인명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내온 인류의 발자취를 접할 수 있는 인문 교양서이자, 소방 현장 실무 이해와 관련 자격증 취득에도 도움이 될 전문·실용서다.

지난 8월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가 세간의 공포심을 부추겼다. 한 전기차에서 시작된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진화하는 데 약 8시간이 걸렸다. 주차돼 있던 차량 140여 대가 전소됐고, 아파트 480세대가 단전·단수, 분진, 유해가스 피해를 입었다. 추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점이 드러났지만,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건 전기차 배터리 발화가 ‘끌 수 없는 불’이라는 점이었다. 전기차 동력원인 리튬이온 배터리의 구조상 화재가 발생하면 내부 온도가 순식간에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 일반적인 소화약제로는 진화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새로운 유형의 화재는 계속 등장하고 소화약제는 나날이 진화한다”면서도 “지금까지 소화약제의 개발과 규제는 희생자들이 생겨야만 마련돼왔다”는 한계를 짚는다. 소화약제 연구는 인명과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위해 끊임없는 혁신과 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엔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런 비용을 지불하려면 사회 전반에 걸쳐 안전의 가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적정 수준의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상 화재 피해의 잠재적 당사자”라고 경고한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시점에 대해선 142만 년 전부터라는 설이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다. 케냐에서 발견된 뗀석기와 함께 발견된 불에 탄 진흙 조각이 그 증거다. 인간은 불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전에 없던 창조력, 생명력과 문명을 일궜다. 음식을 조리할 수 있게 됐고, 깜깜한 밤에도 생산 활동이 가능해졌으며, 추운 날씨와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인간 생명도 보호할 수 있었다. 흙과 금속을 가공해 도구를 제작하게 되는 등 불은 문명의 토대다.

그러나 인간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불은 파괴적이기도 하다. 불의 위험성을 목도한 인간은 점차 재산과 인명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4만 건이 넘는 크고 작은 화재가 벌어지는데, 저자는 인류 역사상 기록적인 화재 사건들도 다룬다. 또 일상 속에 화재를 맞닥뜨렸을 때 적절히 대응하려면 ‘위험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재 재난을 알리기 위한 자동화재탐지 시스템과 사이렌 경보가 설치돼있지만, 정작 소리를 들은 사람이 대피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어서다. 2018년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37명이 숨진 화재 사건 때도 비상벨 소리가 10분이나 계속됐지만 병원 관계자들이 ‘오작동’으로 인식해 10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