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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현장의 시각] 고작 1년 만에 바뀐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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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1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누군가에겐 엄청난 변화를 만들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갓난아이에게 1년은 변혁의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생명조차 이어갈 수 없는 미약한 존재가 걸음마를 떼고 자유의지대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80대 노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큰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어떨까. 스타트업에게 1년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반면 재계에서 손 꼽히는 기업에겐 그렇지 않다. 큰마음을 먹고 신사업에 도전해도 1년 만에 성과를 내긴 어렵다. 대신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당장은 돈 먹는 하마라는 평가를 받아도 10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묵힌 만큼 빛을 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롯데의 행보는 조금 이상하다. 재계 5위권에 꼽히는 그룹사가 신생 스타트업처럼 움직인다. 롯데헬스케어 사례가 대표적이다. 불과 1년 전 서울 잠실 롯데시그니엘에서는 그룹의 신성장동력 중 하나인 롯데헬스케어 출범을 알리는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우웅조 롯데헬스케어 대표는 “그룹 차원에서 헬스케어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고 앞으로 계열사들과 협업 강도가 강해지고 구체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사업은 흐지부지됐고 철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간 롯데그룹이 롯데헬스케어에 투입한 금액은 500억원. 지난해 롯데지주의 연간 이자액(1483억원)의 3분의 1 이상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출범 1~2년은 투자를 계속해야 하지만 3년 뒤, 5년 뒤, 10년 뒤 단계별 사업 성과에 대한 계획이 있다”던 말이 무색하다.

롯데 계열사들의 경영 판단도 1년 새 정반대로 바뀐 것들이 많았다. 사업 경쟁력 강화와 자산가치 극대화를 위해 자산을 매수한다면서 1년 새 비핵심 자산이라고 되판 경우(호텔롯데의 김해CC 매매 사례)나 호텔군 헤드쿼터(HQ)를 만들었다가 1년 새 역할을 축소한 사례가 있다.

살아남기 위한 변화는 중요하다. 때에 따라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답이 안 나오는 사업이나 아끼는 사업을 생존을 위해 접어야 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영 판단이 잦으면 회사 내외부에선 “이러다 말겠지, 하다 말겠지”란 말이 나오기 쉽다. 성장을 위한 변화를 꾀하는데 회사 내외부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이 정말 위기다.

롯데헬스케어를 바라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럴 줄 알았다”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룹 신성장 사업이라는데 설마”했던 목소리가 “역시나”가 되어간다. 지금은 더 실기(失期)해선 안 되는 때다. 변화와 성장을 위한 치밀한 전략과 혜안, 강력한 목소리와 실행력이 필요하다.

연지연 기자(actres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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