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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일부 온실가스 감축예산을 전체로 둔갑시킨 꼼수들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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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정부는 예산을 편성할 때 정해진 지침을 따라야 한다. 마구잡이로 편성하면 안 된다는 거다. 그중에는 '예산 집행으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를 따져 보고서로 만들고 국회에 제출하라는 지침도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예산 편성을 위한 거다. 하지만 정부가 이 지침의 취지를 잘 이해하면서 예산안을 편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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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매년 예산안을 편성할 때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기금운영안 포함)'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국가재정법 제27조). 예산집행 과정에서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분석함으로써 국가재정 운용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대효과와 성과목표, 효과분석 등을 포함해야 한다.

중요한 건 정부의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이 온실가스를 실질적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잡혀가고 있느냐다. 2023년도와 2024년도의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을 분석해 본 결과, 맹점들이 있었다.

감축사업만 기재하고 배출사업은 따로 평가하지 않아 감축사업과 배출사업의 영향을 총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점, 감축예산 비중이 낮은 내역사업을 포함한 세부사업(내역사업<세부사업)의 예산 전부를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으로 과다 반영한 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 2025년도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은 좀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우선 정부가 제출한 2025년도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에 포함된 사업은 총 311개다. '전체 예산'은 12조526억원, '감축예산'은 10조2828억원이다.

[※참고: 여기서 '전체 예산'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다고 인지(판단)한 세부사업들의 총예산'이다. '감축예산'은 '세부사업 내 여러 내역사업들 중에서 실제 감축과 관련된 예산'이다. 따라서 감축예산이 실질적인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의 사업 수는 2024년과 비교해 17개 늘었고, 전체 예산(세부사업 기준)은 1조1750억원(10.8%) 증가했다. 감축예산 역시 1941억원(1.9%)이 늘었다. 정부지출안 대비 전체 예산의 비중은 1.78%로 2024년(1.66%)과 비교해 더 커졌다.

■ 문제➊ 감축예산 비중 축소 = 하지만 이를 두고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 규모가 커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 작성 첫해인 2023년도 정부지출안 대비 전체 예산의 비중이 1.86%였다는 걸 감안하면 비중이 되레 0.08%포인트 줄어들었다.

특히 실질적인 지표인 감축예산의 비중은 2023년 1.55%, 2024년 1.54%, 2025년 1.52%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 운용을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의지와 계획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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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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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➋ 비감축예산 비중 확대 =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에 포함된 비감축예산의 비중이 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전체 예산 대비 비감축예산 비중은 2023년 16.6%에서 2024년 7.3%로 줄었다가 이번에 다시 14.7%로 확대됐다.

비감축예산은 감축예산과 대비되는 것으로,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무관한 예산을 뜻한다. 쉽게 말해 감축에 관여하는 일부 내역사업을 근거로 세부사업 예산 전부를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이라고 적은 것들이다.

일례로 해양수산부의 '군장항 2단계 사업'은 1164억원의 예산 중 고작 14억원(1.2%)만이 감축예산인데, 1164억원 전부를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으로 작성했다. 환경부의 '중소환경기업 사업화 지원사업'과 국토교통부의 '광역버스 공공성 강화 지원사업'의 감축예산 비중 역시 각각 5.1%와 5.5%에 불과했다.

이는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 작성지침을 어긴 것이다. 이 지침은 일부 내역사업으로 세부사업 예산 전부가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으로 둔갑하는 일이 없도록 별도 규정들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비감축예산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말은 정부 부처들이 이런 작성지침을 어기고 있다는 의미다. 예산안 작성을 총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나 환경부가 제대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문제➌ 평가 없는 배출사업 = 문제는 또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면서 정작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사업의 실태는 평가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23년도에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을 처음 발표하면서 "제도가 안착한 후 국가재정 전반의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취지를 고려해 다배출사업 감축 유도 등으로 대상을 넓히고, 지방재정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제도 시행 3년째로 접어드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다배출사업의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 '온실가스 배출사업 영향 평가'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평가도 하지 않으니 관련 계획도 있을 리 없다.

■ 문제➍ 정량사업 감축예산마저 축소 = 그러는 사이 정량사업 감축예산도 계속 줄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사업유형은 직접적인 감축효과가 나오는 '정량사업', 제도ㆍ이행기반ㆍ인식확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정성사업', 기술개발을 통해 장기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사업'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정량사업의 감축예산이 늘어날수록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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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5년도 정량사업의 감축예산 규모는 2023년보다는 2868억원 줄었고, 2024년보다는 1714억원이 줄었다. 그 바람에 2025년도 온실가스 감축예상량은 433만4000톤(t) CO2eq(이산화탄소 환산량)로 2024년(436만2000t CO2eq)보다 2만8000t C02eq 줄었다.

이처럼 정부는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 제도의 도입 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취지를 역행하는 면피성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 제출을 반복하고 있다. 이래서는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하기 어렵다. 헌법재판소의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결정으로 정부는 2031년 이후 탄소감축 목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 재정이 온실가스 감축과 배출에 미치는 총체적인 영향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을 주는 감축예산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의 책무다.

이성현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

lshyun6@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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