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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노스탤지어···과거에 대한 미래지향적 그리움[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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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지음 | 손성화 옮김 | 어크로스 | 456쪽 | 2만2000원

경향신문

노스탤지어는 ‘돈’이 된다. 199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시트콤 <프렌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들이 구독자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요즘 시대에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위키피디아


‘노스탤지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지금이야 크게 해롭지 않은, 때로는 낭만적 울림마저 지닌 감정으로 치부되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노스탤지어는 치명적 ‘질병’으로 분류됐다.

영국 감정사학자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의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는 애초 ‘죽음에 이르는 질병’으로 불렸던 노스탤지어가 어떻게 ‘퇴행적 감정’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거쳐 오늘날에는 ‘긍정적 활력’으로 인정받게 됐는지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노스탤지어를 질병으로 규정한 최초의 인물은 17세기 스위스 의사 요하네스 호퍼다. 호퍼는 1688년 학위논문에서 고향을 떠난 스위스 용병들이 앓는 불가사의한 질병에 ‘노스탤지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퍼는 노스탤지어의 대표적 증상으로 수면 장애, 갑작스런 분노, 탈진, 시력 및 청력 저하, 발열, 식욕 감퇴 등을 꼽았으며 특히 발열과 식욕감퇴는 사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세기 미국에서는 1861년 남북전쟁 발발 이후 2년 만에 2588명이 노스탤지어 진단을 받았고, ‘노스탤지어 환자’ 13명이 사망했다.

노스탤지어는 서구 제국주의의 날개를 달고 빠르게 확산됐다. 강제로 배에 실려 고국을 떠나야 했던 서아프리카 지역 주민들이 주된 희생자가 됐다. “쿠바섬에 처음 발을 디딘 아프리카인들은 주로 자기 안으로 침잠하고 가눌 길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서 식음을 전폐했으며 삶에 대한 의욕을 거의 상실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세상을 떠났다.” 일부 유럽인들은 비백인종이 느끼는 노스탤지어는 “열등함의 징후”로 보고 백인들의 노스탤지어는 예민함이나 애국심의 발로로 보는 위선적 행태를 드러내기도 했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노스탤지어는 정신분석과 심리학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이런 흐름에 기여한 것이 헝가리 심리학자 낸더 포더다. 1930년대 포더는 프로이트 이론을 차용해 노스탤지어라는 감정을 “자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잠재적 욕망의 발현”으로 규정했다. 아일랜드 심리학자 알렉산더 R. 마틴은 “과거, 유년기, 잠, 무의식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물학적이고 주기적인 경향성’에 대한 굴복”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퇴행적’ 감정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 서구에는 “거대한 노스탤지어의 물결”이 일어났다. 1970년대 빌보드 차트 인기곡 순위는 당대에 발표된 신곡이 아니라 192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발표된 노래들이 차지했다. 공연계에서는 1925년 초연 당시에는 실패했던 뮤지컬 작품이 대히트를 기록했다. 1974년 로마에서 열린 발렌티노 패션쇼는 “1930년대와 쿠튀르의 전성기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가득한” 쇼였다.

영국에서는 한 세기 전 빅토리아 양식 패션이 유행했다. 서독에서는 나치 시절 발행된 우표가 인기를 얻고 히틀러 육성 연설이 담긴 LP판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치스 돌격대 메들리’ 카세트테이프가 “차 안에서 듣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문구과 함께 팔리기도 했다. 이에 놀란 서독 정부는 1978년 나치 시대를 미화하는 자료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왜 1970년대 서구에서 노스탤지어 현상이 폭발적으로 나타났을까. 사회학자들은 “그 10년(1960년대) 동안 세상 만물의 전통적 질서가 근본적으로 완전히 뒤집힌 탓에 사람들이 표류하는 듯한 감정을 느끼고 노스탤지어라는 형태의 심리적 진정제를 필요로 하는 상태가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베트남 전쟁, 마틴 루서 킹과 존 F. 케네디 암살, 흑인민권 운동 등 1960년대에 일어난 사회적 격변으로부터 정체성의 위기를 느낀 이들이 심리적 보호 장치로 노스탤지어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변혁에 대한 저항감이었다는 점에서, 노스탤지어에 빠진 이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1970년대 이후 서구 사회는 10년 주기로 ‘노스탤지어의 물결’을 경험한다. 그 배경에는 노스탤지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노스탤지어는 1970년대부터 줄곧 텔레비전 화면에 한결같이 나오고 있었으나, 광고업계의 경영진과 마케팅 연구자들은 새로운 10년이 시작될 때마다 사람들이 그 직전의 10년보다 노스탤지어에 더 심취했다고 강하게 주장했고 판매 수단으로서 그 감정이 지닌 힘을 거듭 재발견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과 영국 보수당의 브렉시트 캠페인은 노스탤지어를 활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한 대표적 사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과 진보 엘리트들이 좋았던 옛 시절을 망가뜨렸다는 백인 노동자 계층의 분노를 자극해 대통령이 됐고, 지금도 같은 논리로 재선을 노리고 있다. 영국 보수당은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해 영국을 유럽연합에서 탈퇴시켰다.

노스탤지어가 우파의 전유물은 아니다. 2000년대 러시아에서는 구소련 시절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텔레비전 채널이 등장했다. 독일의 옛 동독 지역에서는 동독 시절 방송 프로그램과 식품이 유행하는 ‘오스탈기(동쪽+노스탤지어)’ 현상이 나타났다.

뇌과학의 발달은 부정적 평가가 주류였던 노스탤지어의 위상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놓고 있다. 뇌스캐닝 연구에 따르면 노스탤지어를 느낄 때 우리는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어든다. “노스탤지어는 일종의 정서적 갑옷이다.” 노스탤지어가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키워주고 창의적인 생각을 유도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단일한 형태의 노스탤지어보다는 여러 가지 노스탤지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고 말한다. “노스탤지어는 그저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급진적이고 개혁적일 수 있다. 반드시 반동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진보적’-변화를 간절히 바라는 공동체의 필요성에 부응하는-일 수 있으며, 사람들이 현재와 미래를 지향하는 긍정적 행위를 하게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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