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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바다가 산이 됐고 그 산이 정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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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전남 해남 영산강 하구 간척지에 정원형 식물원 ‘산이정원’이 개장했다.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었고 그 땅에 풀과 나무를 심었다. 사진은 산이정원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유영호 작가의 작품 ‘Bridge of Human’.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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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됐다는 뜻으로, 세상사가 너무 크게 변했을 때 이 고사를 쓴다. 전남 해남 영산강 하구에 가면 상전벽해의 정반대 버전이 실재한다. 바다가 땅이 됐고, 그 땅이 풀과 나무 그득한 수목원으로 거듭났다. 이 수목원의 이름은 ‘산이정원’. 바다가 산이 되고 산이 다시 정원이 되어 산이정원이 됐다. 바다를 메울 때부터 정원이 들어설 때까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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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정원의 12개 주제원 중 하나인 ‘서약의 정원’.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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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영산강 하굿둑이 건설된 건 1981년이다. 둑에 막혀 바다에 섞이지 못한 영산강은 이후 서서히 말라 갔다. 이윽고 강이 바닥을 드러내자 땅이, 아니 갯벌이 펼쳐졌다.

염기 밴 땅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애초에는 논밭을 기대했으나 풀 한 포기도 오롯이 자라지 못했다. 그렇게 긴 세월 방치됐던 영산강 하구 갯벌을 다시 주목한 건 김대중 대통령 때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이 허허벌판에 도시를 건설하고 싶었다. 그 사업의 이름이 ‘서남해안기업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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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나무’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나무처럼 보이는 정원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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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간이 흘러 2007년. 마침내 서남해안기업도시 사업이 첫 삽을 떴다. 전라남도·한국관광공사·보성그룹 등 민·관이 협력했다. 서남해안기업도시는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추구한다. 아파트로 빼곡한 여느 신도시와 달리 휴양과 레저를 즐기는 미래형 생활공간을 도모하다 보니 관광공사가 사업 주체로 들어오게 됐다. 이렇게 해서 국내 최초의 관광레저형 기업도시가 탄생했다. 브랜드도 완성했다. 솔라시도(Solaseado). 국내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들인 간척지라는 뜻이 매겨졌다. 솔라시도의 면적은 20.6㎢(632만 평)에 이른다. 여의도 면적(2.9㎢)의 약 7배 크기다. 이 솔라시도 안에 산이정원이 있다.

정원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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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정원을 일구고 있는 이병철 대표.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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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시도는 도시 전체를 정원으로 꾸민 정원도시를 꿈꾼다. 정원도시 솔라시도를 이끄는 주인공이 이병철(56) 아영 대표다. 아영은 솔라시도의 정원 사업을 총괄하는 회사로, 산이정원을 운영한다.

이병철 대표는 국내 수목원·식물원 분야의 장인이다. 이 대표의 전 직장이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이다. 아침고요수목원을 설립한 한상경(74) 삼육대 교수의 제자다. 이 대표는 스승과 함께 가평의 깊은 계곡에서 손수 수목원을 일궜다. 1994년 수목원 개장을 준비할 때부터 2019년 해남으로 내려올 때까지 그는 아침고요수목원을 떠난 적이 없다. 평생 아침고요수목원을 지킬 것 같았던 그가 6년째 땅끝 해남 간척지에서 나무를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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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정원 가든뮤지엄.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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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너무 달랐습니다. 수십 년간 소금기를 뺐다지만 여전히 땅에서는 짠내가 올라왔습니다. 이 넓은 땅에 염분 차단층을 설치한 뒤 그 위에 맨흙을 다시 깐 다음에야 나무를 심을 수 있었습니다. 바람에도 염기가 있더군요. 멀쩡한 나무가 시들시들 말라 죽는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었습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염기에도 강하고 따뜻한 남쪽 기후에 잘 자라는 수종을 찾아 심게 됐습니다. 후박나무·완도호랑가시·녹나무 같은 나무를 주로 심었습니다.”

약속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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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정원의 첫 번째 정원인 ‘태양의 정원’. 태양광 발전단지 한복판에 조성했다. [사진 솔라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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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정원은 미완성 수목원이다. 전체 16만 평(약 53만㎡) 면적 중 5만 평 정도만 먼저 개장했다. 아침고요수목원과 다른 점은 밀도와 채도다. 좁은 계곡에 꽃과 나무를 빽빽이 심은 아침고요수목원과 달리 산이정원은 광활한 간척지에 풀과 나무가 자연스레 어울려 있다. 채도도 산이정원이 낮다. 바람과 염기에 강한 식물을 골라 심다 보니 색깔을 우선할 수 없었다.

산이정원의 12개 주제원 중 가장 의미 있는 주제원이 ‘약속의 숲’이다. 탄소 중립과 생물종 다양성 보존 약속을 위해 지역주민과 함께 2050주의 탄소 저감 수종을 심은 공간이다. 잎이 넓어 탄소를 많이 흡수하는 상록수, 그러니까 붉가시나무·팽나무·비파나무·대나무 등을 심고 약속의 숲 안에 야외 결혼식이 가능한 ‘서약의 정원’을 꾸몄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약속이 결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산이정원에서 열리는 ‘나비프로젝트’도 환경을 주제로 한 예술제다. 이 대표는 “기념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수목원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미래를 생각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약의 정원에 올라서면 산이정원이 훤히 내다보인다. 서약의 정원에서 이 대표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 정원이 다 바다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긴 노동 끝내고 내뱉는 한숨처럼 느껴졌다.

■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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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산이정원으로 가는 대중교통은 아직 마땅치 않다. 목포역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다. 입장료 어른 1만원(주말). 미술관으로 등록된 식물원이어서 정원 곳곳에 미술작품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의 도슨트 투어처럼 하루 2번 산이정원 스토리텔링 투어를 운영한다. 이병철 대표가 직접 해설에 나서기도 한다.

해남=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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