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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월)

[지평선] 100세 찬사받는 전직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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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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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이후의 삶을 통해 전직 대통령의 품위를 한껏 과시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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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39대 대통령(1977~1981) 지미 카터가 지난 1일 조지아주 플레인스 자택에서 100세 생일을 맞이했다. 조지아주는 ‘지미 카터의 날’을 선포하고 카터도서관 등에선 다양한 축하 행사가 열렸다. AP통신에 따르면 카터센터 운영위원회 의장인 손자 제이슨 카터는 “모두가 이 땅에서 100세까지 살지 않지만, 누군가가 100세까지 살면서 그 시간을 그렇게 많은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데 사용했다면 축하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 카터는 11월 미 대선 때 우편투표로 한 표를 행사할 예정이다. 친정인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로 정해 놨다고 한다. 늘 유머감각을 잃지 않은 카터는 “처음부터 전직 대통령이었으면 좋았을뻔했다”는 얄궂은 촌평을 들어왔다. 땅콩 농장주 출신인 그는 백악관 입성 뒤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79년 이란 테헤란의 미 대사관 직원 90명이 인질로 잡혔을 때 파견된 특수부대가 구출작전에 실패하고, 특공대원 8명이 사망했다. 이때 미국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재선 실패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 한국인의 기억엔 그의 인권외교가 각인돼 있다. 미국에 이익이 되면 동맹국의 독재권력을 눈감아주던 행태에 제동이 걸렸고 1979년 6월 29일 서울에서 열린 박정희-카터 회담은 한국 인권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가장 심각한 한미정상회담이 됐다. 퇴임 후 그는 1994년 5월 미국이 북한 영변 정밀타격을 계획한 한반도 ‘1차 핵위기’ 때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일성과 담판했다. 그해 7월 25~27일 김영삼-김일성 평양정상회담 계획도 만들어냈다.

□ 그는 아이티·보스니아 등 국제분쟁지에서 활동하고, 해비타트 사랑의집짓기 운동 등으로 평생을 평화와 인권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고향에선 교회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카터를 두고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란 데 이견이 없는 듯하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 후 검찰 칼날에 단죄 받기 일쑤인 우리로선 부러운 대상이다. 현직 때 공정하고 예외 없는 사법정의가 이뤄진다면 전직 대통령의 고행길은 없지 않을까. 지금대로라면 ‘억울하면 정권 잡아 칼 휘두르라’는 저급한 한마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석원 논설위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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