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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단독] 의료대란 여파 ‘몇 달치’ 약을 한번에 처방···약사들 “두 달 넘으면 약효·변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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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의료대란 여파로 올해 상반기 장기처방 건수가 급증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약국 모습.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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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커진 의료이용 불편으로 몇달치 약을 장기처방 받는 사례가 급증했다. 올해 3~7월 사이 60일치 이상 약을 한꺼번에 받는 장기처방 사례는 월 평균 34만건가량 증가했다. 장기처방 약은 보관과정에서 변질되거나 분실될 우려가 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장기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월별 장기처방 현황을 보면, 전공의 집단 이탈 직후인 올해 3~7월 장기처방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이 기간 60일 이상 장기처방 건수는 월 평균 639만751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05만2941건)에 비해 34만4577건 증가했다. 120일 이상 처방은 월 평균 8만4016건, 180일 이상은 월 평균 5만5230건 늘어났다. 360일 이상 장기처방도 3193건이나 증가했는데, 이는 지난해에 비해 13%나 늘어난 수치다.

지난 2월말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대형병원 외래 진료가 어려워진 것이 장기처방 증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만성질환으로 약을 장기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이 진료 횟수 줄어 장기처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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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들은 장기처방 증가를 우려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약 유효기간이 보통 2년이지만, 보관 기관이 두달이 넘으면 약 효능이 떨어지거나 상하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말했다. 고령의 환자일수록 다양한 약을 캡슐이나 약병째로 판매하는 것보다 약 봉지에 한 회분씩 포장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 경우 약이 온·습도에 따라 변질되기 더 쉽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기처방 질병 상위 5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장기처방이 많았던 1순위는 고혈압 약, 2순위는 인슐린-비의존 당뇨병 약, 3순위는 알츠하이머병 관련 약이었다. 주로 노인들 만성질환에 쓰이는 약들이다.

장기처방은 약 수급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인천지역의 한 약사는 “몇몇 약이 품절돼 구하는데 차질을 빚기도 했다”고 전했다. 제약회사에서는 월별 수요를 예측해 약을 생산하는데 한꺼번에 약을 조제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특정 품목이 품절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몇개월치 장기처방을 받아서 약을 복용하다가 다른 질환으로 약을 추가로 처방받을 때는 기존 약을 폐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며 “폐기되는 약물이 증가하면서 약이 낭비되는 사례”라고 말했다.

2001년에 장기처방을 60일까지로 제한했던 규정이 폐지되면서 현재는 장기처방 기간에 대한 제한이 없다. 처방기간은 의사 권한이기 때문에, 약사들은 처방기간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약만 새롭게 다시 받아갈 수 있도록 하는 ‘처방전 리필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처방전 리필제는 처방전 한 장으로 약을 여러 차례 나눠받도록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90일분의 약을 처방할 때 1회 30일분씩 총 3회에 나눠서 약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이 도입한 제도다.

강 의원은 “의료대란 부작용이 장기처방 폭증 등 여진처럼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보건복지부가 약품의 유통기한 등을 고려한 처방 리필제나 분할처방 도입 등 다각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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