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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길 막고 고성" '러닝크루' 민폐 민원에 지자체 제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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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초구청이 반포종합운동장에 붙인 안내문. 5인이상 단체달리기를 제한하고, 러닝 유료강습을 근절하겠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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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세대에 인기를 끄는 ‘러닝크루’(함께 달리기 모임)에 대해 소음과 통행 방해 등 민원이 쏟아져 각 구청이 대응에 나섰다.

서울 서초구는 지난 1일부터 반포종합운동장에서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하고, 2m 간격을 지키도록 하는 내용의 규칙을 시행했다. 반포종합운동장은 400m 길이 레인 5개로 구성돼 강남권 러닝크루 사이에서 러닝 명소로 꼽히던 곳이다. 서초구청 측은 “최근 러닝 인구가 증가하며 트랙 내 밀집도가 심화되고 있어 안전 우려가 발생하는 데다 일부 단체 동호회의 뭉쳐 달리는 행위, 트랙 내 강습행위 등이 개인 또는 가족 단위 소규모 이용객들에게 심리적 위협과 이용 불편을 야기한다는 민원이 다수 접수됐다”고 시행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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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천에 붙은 '한줄 달리기' 관련 안내 현수막. 지난해 9월 러닝 크루로 인한 민원 제기 이후 성북천 전역에 현수막이 붙게 됐다. [성북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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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석촌호수에 붙은 안내 현수막. ″3인 이상 무리지어 달리기 자제″라고 적혀 있다. [송파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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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도 최근 석촌호수에 단체 러닝을 자제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송파구에 따르면 러닝 크루 관련 공식 민원은 올해 봄부터 15건 접수됐는데 최근 전화 등 문의가 다시 늘고 있다고 한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3인 이상 단체 러닝을 금지하는 현수막을 걸고, 민원에 대해 안내방송을 하고, 현장 계도 활동을 하는 등 조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성북구청도 지난해 9월 “산책로에서 길을 막고, 소음을 유발하는 단체(러닝크루)가 있다”는 민원을 받고 성북천 인근에 ‘한줄로 달리기’를 장려하는 현수막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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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댕댕이런' 루트 모양. 강아지, 토끼, 고구마 등의 모양을 본딴 러닝 코스를 인증하는 게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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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시민들은 이 같은 조치를 반기는 입장이다. 서울시 강남구에 거주 중인 김모(32)씨는 “혼자 조용히 걷고 싶은데 기합을 넣는다며 소리를 지르거나 높은 음량으로 음악을 튼 채 달리는 무리를 볼 때마다 당황스럽다”고 털어놓았다.

러닝크루 활동이 변질했다는 지적도 있다. 평소 한강 변을 자주 뛴다는 이모(28)씨는 “러닝 크루 자체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요즘은 인증을 위해 횡단보도 한가운데를 점령하는 등 무질서하고 난폭한 느낌이 든다”며 “일부 기업들에서 러닝 관련 인증이나 챌린지를 마케팅으로 사용하면서 급조된 모임이 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최근 유행하는 ‘고구마러닝’ ‘토끼러닝’같은 이색 러닝 루트야말로 보여주기식 러닝으로 필연적으로 부상과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댕댕이런·토끼런·고구마런 등은 러닝 루트를 강아지, 토끼, 고구마 등의 모양으로 만드는 일종의 놀이다. 러닝 루트를 기록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특정 모양을 만드는 방식으로,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이같은 지자체의 조치가 과도한 제재라는 반발도 있다. 500여명이 속한 전국구 러닝크루를 운영 중인 김모(39)씨는 “한강 뿐 아니라 야외 공간에서 인증샷을 찍는 게 러닝크루만 있는 것도 아니고, 관광객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가 인증샷을 찍는데 굳이 러닝크루만 꼭 집어서 인증샷 문화를 비판하는 점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러닝크루라는 생활체육 문화가 잘 정착할 수 있게 소통에 힘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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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 지난해 4월부터 운영해온 7979 러닝크루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7979러닝크루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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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에서 러닝크루를 제재하는 것과 반대로, 서울시 차원에서는 러닝크루를 장려해왔다는 점에서 ‘엇박자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7979러닝크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매주 60여 명의 참가자를 모집해 서울 전역에서 러닝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누적 인원만 2700명이 넘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초구 조치는 시설관리 조례에 근거해서 충분히 제한 가능한 조치”라면서도 “7979러닝크루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20명 미만으로 나눠서 한 줄로 달리고, 음악을 틀지 않는 등 올바른 문화 정착에 힘써왔다. 시민 만족도도 높은 사업이라 계속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학준 경희사이버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일반 시민들과 체육회 멤버들 간의 갈등은 초창기 축구, 테니스 등이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비슷하게 불거진 문제로, 과도기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굳이 사람 많은 곳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뛰면 시민들 입장에서 위화감이 들 수도 있는 만큼, 지역 시민들이 시설물을 자주 사용하는 평일 저녁 시간만 피하는 식으로 시간 조절만 해줘도 갈등이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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