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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기자수첩] 한미약품 창업주의 꿈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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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벌써 10개월로 접어들었다. 한미약품그룹이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모녀 측, 장남 임종윤 이사와 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형제 측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분쟁 종식에 대한 기대감만 키워왔다.

그사이 양측의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다. 최근 한미사이언스는 언론사 보도자료를 통해 모녀 측 인사인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를 두고 “꼭두각시” “하수인”이라고 했고, 한미약품은 “모욕적인 표현”이라며 “업무방해를 판단할 방법 고민하겠다”고 응수했다. 모녀와 형제 측 법률대리인들은 2일 경영권 분쟁으로 일어난 임시주주총회 소집 청구 관련 심문기일 때문에 법원에 등장하기도 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미약품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은 독일 제약사 머크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머크는 올해로 벌써 356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사다. 창업자인 프리드리히 머크가 1668년 독일 다름슈타트에 세운 약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임 회장이 1967년 서울 종로구에 ‘임성기약국’을 세워 창업했으니, 머크와 한미약품의 시작도 비슷하다.

머크의 가장 큰 특징은 경영구조이다. 머크는 가족경영을 굉장히 강조되는 기업이다. 가족 보유 주식이 전체 지분의 70%에 달하고, 이 주식은 제3자 매각이 금지된다. 머크는 주기적으로 200명 규모의 ‘가족 총회’를 개최해 가족의 기업 참여와 가치를 공유한다. 이곳에서 미래에 머크를 이끌어갈 만한 인재를 찾기도 한다. 가문은 12명으로 구성된 가족위원회를 구성하고, 결정된 사안을 전문경영인으로 이뤄진 지주사 이사회에 전달한다.

실제로 한미약품은 머크와 비슷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은 2010년 한미약품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손자·손녀 7명에게 소량의 지분을 증여했다. 임 회장 타계 후에도 송 회장이 언론에 나서 머크와 같은 성공 사례를 참고하겠다는 발언을 주기적으로 이어갔다.

현재 한미약품의 모습에선 ‘가족의 정’은 찾아볼 수 없다. 경영권 분쟁으로 모녀와 형제 측 법률대리인이 올해만 수차례 법정을 오갔고, 오너 일가 장남이 모녀 측 인사로 분류되는 계열사 대표를 고발하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이 주목받다 보니 한미약품을 국내 ‘빅5′ 제약사로 올려준 ‘신약 개발 명가’의 의미도 퇴색하고 있다. 신약 개발 명가를 믿고 한미사이언스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의 속도 타들어 간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상속세 5300억원’이라는 가족 공동의 숙제로 시작됐다. 가족이 매일 모여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바쁘게 뛰어다녀도 해결하기 힘든 액수다. 모녀는 신 회장과의 지분 거래로 상속세를 해결했지만, 형제는 여전히 재원 마련이 요원하다. 이럴 때일수록 합심해 내부혼란을 잠재우고, 장기(長技)인 신약 개발에 집중하는 게 창업주와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법이다.

송복규 기자(bgso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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