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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이모님 실종사건'이 남긴 것[우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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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어린 자녀를 대리 양육자(아이돌보미)에게 맡긴 부모가 가장 곤혹스러운 경우는 언제일까.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돌보미가 갑자기 그만뒀을 때가 아닌가 싶다. 예상치 못한 양육자 교체가 아이의 정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걱정 탓이다. 대개 부모의 심리적 압박감과 아이의 정서적 충격은 대리 양육자가 자녀와 함께 했던 시간과 비례한다. 새 양육자와 낮선 환경에 또 다시 적응해야 하는 아이가 딱해 부모는 죄 지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커리어와 생계를 포기하고 육아를 스스로 떠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이와 양육자 사이에 정서적 유대감과 애착이 형성되는 '골든타임'은 만3세 이하 영유아기다. 이 시기에 양육자 교체가 잦거나 주 양육자와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아이에게는 '분리 불안' 등의 정서적·심리적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드물지만 심한 경우 '반응성 애착 장애(Reactive Attachment Disorder·RAD)'로 이어지기도 한다. 양육자의 부재와 무관심, 수시 교체가 아이의 정신적·신체적 발달을 지연시키는 장애로 이어지는 것이다. 분리 불안과 반응성 애착 장애가 아이의 생애주기에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는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최근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의 무단 이탈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와 벙벙함, 부모가 느낄 허탈함과 당혹감이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지난달 3일부터 일선 가정에서 아이돌보미 업무를 시작했다. 그 중 2명이 지난달 15일 숙소를 나간 뒤 여전히 연락 두절이다.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돌봄 현장을 떠나 버린 셈인데 둘 중 한 명은 두 가정에서, 또 다른 한 명은 네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봤다고 한다.

정확한 배경은 알 길이 없지만 불법체류자 신분과 강제 추방 가능성에도 더 많은 급여를 찾아 일탈했다는 추정이 나온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사라진 가사관리사들과 밀도 있는 애착을 형성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아이 돌봄의 가치와 직업적 책임을 가벼이 여기는 가사관리사라면 차라리 아이를 맡기지 않는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모쪼록 아이들이 다시 좋은 대리 양육자를 만나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모님 실종사건'을 계기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무용론도 나오는데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저출생·고령화로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과 도움없이는 이미 노동 현장은 돌아가지 않는다. 아이 돌봄과 간병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돌봄·간병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저출생과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해 외국 인력의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첫 시도다. 시범사업 기간인 6개월 동안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급여 수준과 처우, 비자 문제, 고용 안정성 보장 이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필리핀 가사관리사와 반년간 애착을 쌓은 아이가 본사업 중단으로 '분리 경험'을 겪을 수 있다는 점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bborir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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