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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단독] “헤즈볼라, 베트콩처럼 게릴라전… 이스라엘, 이겨도 피해 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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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내부 상황 어떤가

현직 의원·연구원 인터뷰

조선일보

1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국경을 넘어 남부에서 제한적인 지상 작전을 개시했다. 전날 밤 이스라엘군의 탱크가 어둠을 뚫고 레바논 국경 지대로 이동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땅에서 지상전을 개시한 건 2006년 제2차 중동전쟁 이후 18년만이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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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국민은 헤즈볼라를 싫어하더라도, 그들이 이스라엘을 막을 유일한 존재기 때문에 맞서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베이루트 대안정책센터’ 연구 책임자 니자르 가넴)

이스라엘이 1일 레바논 남부 국경에 병력을 투입,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와 지상전을 개시하면서 레바논 사회 내 혼란과 불안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정치적 분열과 경제난으로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국가가 이번 사태로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지는 레바논 국민이 현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파악하고자 현지 국회의원과 학자를 인터뷰했다.

가넴 책임자는 이날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레바논에서는 대량 학살(mass assassination)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무선 호출기 폭발’ 공격으로 전국의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았고, 지금은 남부 마을 수십 곳이 대규모 폭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폭격을 피해 베이루트나 북부 교외로 무작정 향하는 피란민이 100만명이나 됩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대원만 표적 공습한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자기가 사는 수도 베이루트의 아파트 단지 등 주거 지역에도 연일 무작위 공습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레바논에는 방공망이 거의 없다. 1960년대 베트남전 때처럼 민간인 사상자가 엄청나게 나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가넴은 레바논을 “위태롭다(fragile)는 말로 부족하다. 실패한(failed) 국가”라고 묘사했다. 이런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면전에 대한 국민의 공포는 극에 다다랐다. 가넴은 “레바논 국민 대다수가 지금의 레바논 정부에는 이스라엘을 저지할 수단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사망하자, 레바논 사회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가넴은 말했다. “헤즈볼라와 나스랄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하지만 (정부가 무력해) 국민 대다수는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침공을 막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헤즈볼라에 대한 레바논 주민의 감정이 ‘스톡홀름 증후군’(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게 공포심 때문에 긍정적 감정을 가지는 현상)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조선일보

그래픽=김하경


이런 상황을 만든 헤즈볼라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레바논의 소수 정당 ‘변화의 힘(Force of Change)’ 소속 이브라힘 미엠네 의원은 “헤즈볼라의 무력이 정부 통제를 벗어나 많은 문제가 발생해 왔다”고 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침략에 맞서 싸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통제를 받지 않는 헤즈볼라 때문에 레바논은 주권을 잃고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 같은 외세에 휘둘리게 되었습니다.” 8만5000여 명인 레바논 정부군은 현재 지휘 체계가 망가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헤즈볼라는 병력이 10만명이라고 주장한다. 레바논 정부는 2020년 국채 이자를 갚지 못하고 파산해, 정부군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 무기가 훨씬 첨단이라고 한다.

미엠네 의원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오랫동안 있어 왔고, 우리는 이런 상황(이스라엘 침공)에 대해 항상 경고해 왔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헤즈볼라가 이끄는 친(親)시리아계 동맹이 의회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2년째 공석인데, 그는 이에 대해서도 “헤즈볼라와 동맹이 권력을 쥐고 대통령 선출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국가로서 레바논이 수립한 제도는 헤즈볼라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때문에 제도를 뛰어넘는 정치적 정당성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모두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이 헤즈볼라를 완전히 해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넴은 “헤즈볼라는 게릴라 전술, 지하 땅굴 등 베트남전 때의 베트콩과 유사한 전략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군처럼 조직화한 군대를 상대한다면 오히려 더욱 강력할 수 있는 전술”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지상군 투입으로 헤즈볼라에 일시적으로 이길 수는 있지만, 자신들의 손실도 베트남전 때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미국이 (시간이 많이 필요한 표적 공습 대신) 베트남 민간인 마을을 통째로 폭격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으로 레바논 민간인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엠네 의원도 “나스랄라가 암살당했다고 해도 헤즈볼라는 여전히 기능하고 있지 않나. 이스라엘의 지상 공격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고 했다.

이들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침공을 막을 유일 조직인 상황이 계속된다면 레바논에 평화가 찾아오기 어렵다는 데 동의했다. 레바논 정부가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하고, 국제적으로도 새로운 안보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엠네 의원은 “헤즈볼라가 아닌, 레바논 정부가 군대와 전쟁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가넴은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전쟁 범죄는, 헤즈볼라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들(헤즈볼라)을 반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헤즈볼라를 대신해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을 억지할 힘을 확립할 수 있는 지역 안보 협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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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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