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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서울대 의대, 집단 휴학 첫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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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장이 단독 처리

‘동맹 휴학 불가’

정부 방침에 역행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이 7개월 넘게 수업을 거부하며 학교에 돌아오지 않는 가운데 서울대 의과대학이 학생들이 낸 휴학계를 일괄 승인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의대생들이 집단으로 낸 휴학계를 승인한 것은 서울대가 처음이다. “동맹 휴학은 승인이 불가능하다”는 정부 방침과 충돌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대 의대는 학생들이 지난 2월부터 제출한 1학기 휴학계를 전날 밤 10시쯤 일괄 승인했다. 서울대 의대 재적 학생 약 800명 중 90% 이상이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휴학계를 내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지금껏 서울대 의대는 정부의 ‘동맹 휴학 불가’ 방침에 따라 이들의 휴학계를 승인하지 않았는데, 전날 김정은 의대 학장이 전격 휴학을 처리한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다른 대학 의대에서도 휴학을 승인하라는 학생과 교수들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의대학장이 독단적으로 휴학을 승인한 것은 학생들을 의료인으로 교육시키고 성장시켜야 할 대학 본연의 책무를 저버린 매우 부당한 행위”라며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즉시 현지 감사를 추진하고, 중대한 하자가 확인될 경우 엄중히 문책하고 바로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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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서울대 의대가 학생들이 낸 휴학 신청을 받아들인 배경에는 “의대생 복귀의 골든타임이 지났다”는 판단이 있다. 서울대 의대는 2학기가 시작한 지난달 초부터 전체교수회의와 주임교수회의를 잇달아 개최해 ‘의대생 휴학 신청 승인’ 안건을 논의했다고 한다. 서울대 의대 한 교수는 “최근 열린 주임교수회의에서 ‘10월이 되면 학생들을 유급시킬 수밖에 없는데, 유급을 막기 위해선 그 전에 휴학을 승인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이후 김정은 서울대 의대 학장이 전산상으로 접수된 학생들의 휴학계를 지난달 30일 밤 일괄 승인한 것이다.

전국 대부분 의대생은 지난 2월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하자 1학기부터 단체 휴학계를 내고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일 기준 전국 40개 의대 학생 1만9374명 중 2학기에 등록한 인원은 653명(3.4%)뿐이다. 등록 인원이 한 명도 없는 의대도 9곳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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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정부는 ‘동맹 휴학’은 법령상 휴학을 할 수 있는 사유가 아니기 때문에 학칙에서 규정한 절차와 요건을 갖췄더라도 대학이 승인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의대생들이 ‘집단 유급’을 당하는 사태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이 집단 휴학하거나 유급을 하면 당장 내년 의대 교육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올해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 예과 1학년 학생에 정원이 늘어난 내년도 신입생을 더하면 7500여명의 1학년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들은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의 수련 기간까지 합쳐 11년을 함께 보내야 한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지난 7월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며 학기 단위로 이뤄지는 학사 일정과 성적 평가를 ‘학년제’로 바꿔 운영하는 방안 등을 각 대학에 권고했다. 대부분 학생이 1학기 수업을 듣지 않은 만큼, 학생들이 2학기에라도 복귀하면 1학기 때 못 들은 수업과 평가를 몰아서 할 수 있게 해 집단 유급을 막자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 등 각 대학은 이런 교육부 방침에 따라 성적 처리 기한을 연장하고 학사 일정을 조정하면서 학생들 복귀를 기다려왔다. 교육부는 지난 7월에 “9월이 의대생 복귀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대학은 한 학년에 30주 이상 수업 일수를 채워야 하는 만큼 9월이 마지노선이란 뜻이다. 그러나 9월이 지나도 의대생이 복귀하지 않자, 복귀 마지노선을 11월로 미뤘다. 수업을 오전·오후로 쪼개서 진행하면 15주가 필요하기 때문에 11월 초까지만 돌아오면 학년을 마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의대 교수들은 “15주 만에 1년치 수업과 평가를 몰아서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최근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교육부에 ‘휴학을 승인할 수 있게 해달라’고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의대가 전국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교육부나 대학 본부 측과 논의 없이 전격 휴학 승인을 결정한 것이다. 서울대 의대 관계자는 “휴학 승인 배경에는 학생들이 2학기에라도 돌아와서 한 학기라도 수업을 제대로 듣게 하자는 취지도 있다”고 했다. 학생들 중에는 1·2학기 학습을 2학기에 몰아서 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복귀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으니, 1학기는 휴학을 해주고 2학기부터 한 학기 수업만 들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학생들이 복귀해 한 학기 수업이라도 들으면, 내년 모든 수업에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는 등록한 학생이 없어 대부분의 강의가 폐강된 상황이지만, 학생들이 복귀하면 언제든 다시 개설한다는 방침이다.

이종태 KAMC 이사장은 “교육부가 이제는 각 의대 요청에 따라 학생들 휴학을 승인해주는 것으로 방침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며 “정부와 이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학생을 더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을 이해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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