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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글로벌 현장을 가다/김철중]“학교 보내기 무섭다”… 日 초등생 잇단 피습에 ‘일본어 대화’도 듣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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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초등생 피습 이후 커지는 中 ‘외국인 혐오’ 우려

中서 6월, 9월에 日 어린이 피습… “힘없는 어린 학생 노렸다” 분노

中 “개별 사건” 확대 해석 경계… “중, 극단적 애국주의 방치한 탓”

中서 외국인 대상 범죄 이어져… 한국 정부도 “상황 예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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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전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에 있는 일본인국제학교 정문에 철제 울타리가 쳐져 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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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18일 선전(深圳)시에서 벌어진 일본인 초등학생 피습 사건 이후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한층 강화된 모습이었다. 지난달 27일 오전 8시경 중국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에 있는 한 일본인학교. 출입구는 등교 시간이 끝나자마자 굳게 닫힌 뒤, 1시간 넘게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차량이 드나드는 정문 앞에는 철제 울타리도 세워져 있었다. 언제부터 울타리를 설치했는지 물어보려 학교 출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한 보안 요원이 다가와 취재를 막았다.》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일본인학교 맞은편에 있는 국제학교 소속 유치원은 아직 등원이 한창이었다. 유치원 역시 일본인 미취학 아동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다. 도로에선 녹색 안전 조끼를 입은 교통 통제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정문 앞에는 정장 차림인 경비원 3명이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부모들은 정문 바로 앞까지 차로 온 뒤에 차에서 내려 정문까지 몇 걸음에 불과한 거리를 아이의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었다. 중국 공안은 학교에서 10여 m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 두고 등원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들을 지켜봤다.

● 열 살 어린이 사망… 일본 교민사회 발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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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하던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피습된 선전(深圳)시 일본인학교 앞에 놓인 꽃다발. 중국어로 ‘아이야, 미안해’라고 쓰여 있다. 출처: X(옛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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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선전시에서 등교하던 열 살짜리 일본 어린이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학교를 불과 200여 m 앞두고 벌어진 사건이었다. 6월에는 장쑤성 쑤저우(蘇州)시에서 학교 버스에서 내리던 일본인 모자(母子)가 다쳤고, 중국인 안내원이 숨졌다. 3개월 만에 일본인을 상대로 한 흉악범죄가 연이어 벌어진 것. 특히 지방 소도시도 아닌 중국 4대 도시 중 하나인 선전시에서, 게다가 어린 학생이 피해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지난해 중국은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결정한 이후 일부 중국인들이 주중 일본대사관과 일본인학교에 돌과 달걀을 투척하는 등 반일 감정이 커졌다. 이번 선전시 사건의 경우 공교롭게도 1931년 일본이 만주 침략 전쟁을 시작한 만주사변(9·18사변) 93주년 당일에 벌어졌다. 과거사를 염두에 둔 ‘보복 범죄’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재중 일본인 사회는 크게 동요하고 있다. 베이징 일본인학교의 경우 보안 요원을 늘리고, 통학버스가 기존과 달리 학교 바로 앞에 정차하도록 하는 등 안전 조치를 강화했다. 광저우에선 13개의 모든 일본인학교에서 학교 버스에 경비원을 동승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부모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일본인학교에 초등학생 자녀를 보내는 40대 일본인 남성은 “힘없는 어린 학생을 노린 범죄가 연달아 발생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며 “주말과 국경절 연휴 가족 여행도 취소했다”고 털어놨다.

학교 인근에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레지던스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린 손자와 함께 단지 내를 거닐던 일본인 할머니는 타인을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레지던스 관계자는 “여기서 학교까지 걸어서 5분도 안 되지만, 지금 아이 혼자 보내는 부모는 거의 없다”며 “다들 경계가 심해 단지 내에서도 일본어로 말하는 걸 듣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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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취학 일본인 어린이들이 많이 다니는 맞은편 유치원에서는 보안 요원들이 나와 아이들의 등원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달과 6월 일본인 어린이를 노린 범죄가 잇따라 발생해 중국 내 일본인 교육시설에 대한 보안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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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일본 기업들은 직원들이 원할 경우 귀국도 지원한다. 파나소닉홀딩스는 중국에서 머무는 주재원들이 원할 경우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일시 귀국할 수 있도록 했다. 우치다 마사히로 선전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많은 회원사들이 주재원들에게 귀국 의사를 타진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일본인 초등생 피습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증오 범죄가 아닌 ‘개별 사안(個案)’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비슷한 사건은 세계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일본인이나 특정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흉악범죄라는 인식이다.

● “중국의 왜곡된 민족주의가 원인”

문제는 사건 발생 이후에도 중국 소셜미디어 등에선 반일 선동 발언이 멈추지 않고 있단 점이다. 홍콩 매체 밍(明)보에 따르면 쓰촨(四川)성 농업농촌부 산하 기관의 한 관계자는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일본인을 죽인 것이다. 우리의 기율은 일본인을 살해하는 것”이라는 망언을 쏟아냈다. 지난달 25일 중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사실이 알려진 뒤 일부 중국인들은 “사과를 요구하는 일본에 좋은 교훈을 줬다” 등의 글을 온라인에 올리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각에선 ‘샤오펀훙(小粉紅)’ 같은 극단적 애국주의의 확산이 외국인 대상 범죄가 이어지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민족주의를 키워 내부 결속을 다지면서도 해외 기업이나 국가를 향한 선넘는 비판 행위를 사실상 방치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특히 반간첩법 시행 등 국가 안보를 중시하는 정책들로 오히려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키워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중국의 경기 침체로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 등에 대한 적대감이 팽배해졌다”며 “온라인을 중심으로 고조되던 증오가 실제 현실 폭력으로 번지는 사태까지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이에 지난달 23일 미국 뉴욕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만난 가마카와 요코(上川陽子) 일본 외상은 “소셜미디어에 확산되고 있는 근거 없는 ‘반일’ 게시물을 단속해 달라”고 중국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 내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피습된 학생이 다니던 선전일본인학교에는 중국인들이 보낸 조화가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웨이보(중국 소셜미디어) 계정에 숨진 학생을 애도하는 글을 올리는 중국인도 적지 않다. 중국의 대표 쇼트폼 플랫폼인 콰이서우(快手)는 사건 발생 이틀 뒤인 지난달 21일에 중일 대립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90여 개의 계정을 차단했다. 자오훙(趙宏) 중국 정법대 교수도 같은 날 올린 글에서 “애국심이 이런 식으로 악용된다면 또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지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자오 교수는 “주변에서 이 글을 쓰지 말라고 만류했다”며 “아이는 숨졌고,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공범이다”라고 중국인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자오 교수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 한국 교민들도 안전에 유의해야

최근 중국에선 일본인뿐 아니라 다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도 잦다. 지난해 10월엔 중국 주재 이스라엘대사관 직원이 길거리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았다. 올해 6월 지린(吉林)성의 한 공원에선 대낮에 미국인 대학 강사 등 4명이 50대 중국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다치는 사건도 벌어졌다. 일본인 대상 2건을 포함하면 1년 동안 알려진 사건만 4건으로 피해자는 10명에 육박한다. 모두 단독범의 소행이란 것만 밝혀졌을 뿐, 아직 정확한 범행 동기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외국인 혐오 범죄이거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외국인에게 표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정부도 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다만 직접 피해를 입은 일본과 달리, 당장 특별한 조치에 나서기보다는 이번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며 대응 수위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한한령(限韓令)을 내렸고, 당시 한국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 내에선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해협 관련 발언, 케이팝을 중심으로 한 한국 문화의 글로벌 인기에 대한 열등감 등으로 일본보다 한국을 더 싫어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일본인 초등생 피습 사건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19일 교민들에게 “거동 수상자들의 돌발 행동에 항상 유의하고, 사건 사고 발생 시 즉시 대사관에 연락을 취해 달라”고 공지했다.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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