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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뇌파 이상으로 뇌전증 발작… 약물로 안되면 뇌에 전극 꽂아 자극치료[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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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발작 조절하거나 없애려면

뇌전증 환자의 20∼30%는 2가지 이상 약물로도 개선 안돼

뇌파 검사로 뇌전증 성질 파악후

뇌에 전극 꽂는 신경조정술이나 발작 부위 잘라내는 뇌수술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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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장면이다. 덕선이네 반 반장이 갑자기 뇌전증으로 인한 발작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덕선이가 반장 어머니께서 미리 부탁하신 대로 반장의 기도를 잘 확보해 주고, 양호실로 안내해 주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다. 가장 어렵고 힘들 때에 내색하지 않고 도와주는 친구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뇌전증은 그 반의 1등인 반장이 가진 뇌질환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환이다.》

동아일보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반장처럼 가끔 발작이 일어나는 경우 별문제 없이 오랜 기간 생활할 수 있지만, 잦은 발작은 지속적으로 뇌를 망가뜨릴 수 있다. 따라서 발작을 조절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뇌전증을 의심하게 되는 대표적인 증상은 근육긴장 이상, 아린감, 근육간대경련, 얼굴 떨림, 혼수, 청색증 등이 있다. 하지만, 알아차리기 어려운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많은 경우에 뇌전증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도 어렵고, 반대로 뇌전증이 아닌데 뇌전증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뇌전증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검사가 뇌파 검사이다. 뇌전증 진단을 위한 간단한 뇌파는 20∼40분 정도 측정한다. 전해질 불균형, 산-염기 이상, 요독증, 알코올 금단현상, 심한 수면박탈 상태 등과 같은 발작을 일으킬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뇌파상 뇌전증에 해당하는 이상 파형이 보이는 경우 뇌전증으로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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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뇌전증의 발작을 조절하고 더 나아가서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하는 치료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른 뇌질환과 달리 뇌전증은 약물 치료, 수술 치료, 신경조정술 같은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이 있다. 뇌전증은 일차적으로 약물 치료를 한다. 뇌전증 발작을 조절하는 많은 약물이 지난 수십 년간 개발되었고, 이 약물들은 각기 다른 효능과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어떤 약물을 사용할지는 개별 환자의 뇌전증의 성질과 감당할 수 있는 부작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정한다.

하지만, 두 가지 이상의 약물 치료로도 증상이 조절되지 않는 환자가 20∼30% 정도 된다. 그런 환자들은 수술 치료나 신경조정술 치료의 대상이 된다. 수술 치료는 뇌전증 발작의 시작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의 뇌를 잘라내는 수술이고, 신경조정술은 뇌에 전극을 꽂아서 뇌의 잘못된 기능을 고쳐주는 방법이다. 승인되어 사용되고 있는 뇌전증 신경조정술에는 3가지가 있다. 미주신경자극술(VNS), 뇌심부자극술(DBS), 반응성신경자극술(RNS)이다. 미주신경자극술과 뇌심부자극술은 정해진 영역에 전극을 꽂아 상시 자극을 하지만, 반응성신경자극술은 환자 개인의 뇌전증 발생 위치에 따라 맞춤형으로 발작이 일어나는 위치와 때에 맞추어 선택적으로 자극한다. 약물 치료와 달리 수술 치료나 신경조정술은 각 환자의 뇌전증과 관련된 정확한 뇌 부위를 알아내야 효과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수술 치료나 신경조정술 치료를 위해서는 24시간 이상의 비디오 뇌파를 촬영해 뇌전증의 정확한 성질을 파악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장기 뇌파로도 판단하기 어려울 때 두개골 안에 전극을 삽입해서 신호를 측정하는 뇌피질전도(Electrocorticography)나 작은 구멍을 통해 뇌 안에 직접 전극을 삽입해서 측정하는 입체뇌전도(Stereoelectroencephalography) 같은 기술을 활용한다.

하지만, 뇌파를 찍고 판독하는 일은 전문 인력과 시설이 부족한 많은 병원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기술이고, 판독이 가능한 의사 수는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한편, 뇌피질전도나 입체뇌전도를 찍는 일은 직접 두개골을 관통해서 측정하는 침습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대형 병원에서만 가능한 시술이지만, 시술을 받더라도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뇌파를 어디서나 쉽게 측정하고 전문가가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 그리고 뇌파 같은 비침습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어 침습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효과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를 포함한 모든 환자에게 좀 더 나은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뇌전증 환자로 분류되는 환자뿐만 아니라 자폐 환자의 10∼30%, 치매 환자의 22∼54%도 뇌전증을 가지고 있다. 자폐나 치매는 치료 방법이 없지만, 뇌전증은 치료 방법이 있다. 또한, 뇌전증 증상이 있는 자폐나 치매 환자가 뇌전증을 방치하는 경우 뇌에 지속적인 손상이 와서 질병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뇌전증, 자폐, 치매 환자는 대부분의 경우 뇌전증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의 의료는 인공지능 같은 기술들을 활용해 많은 정보를 해독하고 이를 통해 맞춤형 치료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든 뇌 질환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최대한 빨리 지금 아픔에 처한 환자들을 돕는 일은 내일의 문제가 아니고 오늘의 문제이다. 뇌전증은 많은 뇌질환의 합병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이다. 따라서 치료가 가능한 환자들을 당장 찾아내서 치료하는 일은, 인류의 뇌질환 정복의 첫걸음일 뿐만 아니라 ‘응답하라 1988’의 반장과 같은 학생이 뇌질환을 극복해 행복하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중요한 사회적 의무의 실천일 것이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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