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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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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쿰한 된장 냄새 나는 큰스님의 옻칠 예술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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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동’이란 제목을 붙인 두번째 섹션 전시장 중심 공간에 대형 옻칠 천 그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연속적으로 내걸려 있다. 세로 길이 2m를 넘는 대형 천 화폭에 옻과 안료를 섞은 액을 무작위로 흘려 붓고 바람에 말려 빚어낸 결과물이다. 갖가지 색깔들이 일정한 형상 없이 서로 엉키고 스며들면서 추상적인 화면을 이뤘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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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쿰한 메주 냄새가 감돌았다. 어둠 속에 살포시 윤곽이 드러난 검은 기둥 사이를 오가면서 코에 풍기는 옻칠 냄새는 된장 냄새와 통했다. 사람 키보다 큰 검은 기둥들은 삼베에 옻을 여러번 칠해 굳히고 또 굳히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의 가장 큰 정신적 지도자인 종정을 맡고 있는 성파스님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40여년간 이어온 예술 활동을 소개하는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코스모스’는 된장 같은 옻칠 냄새가 풍기는 특유의 기둥 설치 작품으로 지난 28일 막을 올렸다.



수행과 생활, 작품활동을 함께 해온 성파스님이 작업한 2천여점 가운데 1980년대 처음 선보였던 금니사경을 비롯해 옻칠 회화, 기둥 설치 작업물 등 120여점이 나왔다. ‘태초’(太初), ‘유동’(流動), ‘꿈’(夢), ‘조물’(造物), ‘궤적’(軌跡), ‘물속의 달’ 섹션으로 이뤄진 전시의 핵심은 옻칠 작품들이다. 표면에 얇은 헝겊을 대고 옻칠을 반복해 완성한 도자기 외에 안료와 옻을 섞어서 만든 물감으로 그린 회화 작품, 옻판에 옻을 칠해 민화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그림들이 나와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유동’이란 제목을 붙인 두번째 섹션 전시장 중심 공간에 대형 옻칠 그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연속적으로 내걸려 장관을 펼친다. 세로 길이 2m를 넘는 큰 천 화폭에 옻과 안료를 섞은 액을 무작위로 흘려 붓고 바람에 말려 빚어낸 결과물이다. 갖가지 색깔들이 일정한 형상 없이 서로 엉키고 스며들면서 추상적인 화면을 이뤘다.



먹지에 금물로 경전 글씨를 옮겨 쓴 금니사경 출품작은 드높은 부모 은혜를 되새기고 보답하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의 내용을 담았다. 한 글자 쓰고 세번 절하면서 만들었다는 이 작품은 검은 바탕 종이에 선연하게 쓴 금빛 글씨가 엄정하다. 중국 대가에게 수년간 배운 뒤 그린 산수화들과 물이 든 수조에 가라앉힌 모습으로 감상하는 수중 옻칠회화 등도 나와 다채롭고 폭넓은 그의 작업 여정을 보여준다.



그는 80년대 중반 고려시대 옛 불경을 옮긴 금니사경 작업을 시작한 이래 90년대 이후 서예, 도자기, 옻칠 민화, 건칠 조형물 등을 중국 유학과 독학으로 섭렵하면서 높은 완성도의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팔만대장경 각 한벌을 도자판 두벌로 만든 16만 도자대장경을 21년간 작업해 2012년 장경각에 봉안했고, 2014년 옻칠 물감으로 그린 민화를 처음 선보였다.



이번 전시회는 2020년 옻칠 민화 전시로 주요 작품 100여점을 한자리에 모은 이래 그의 작업 세계 전체를 집약해 펼친 자리란 점에서 뜻깊다. 칠할수록 본바탕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옻칠 비법을 회화와 도자 등에 마음껏 구사한 수작들을 통해 예술과 수행, 생활에서 중심을 놓지 않고 살아온 선승의 도량을 실감할 수 있다. 11월17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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