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일 최종주씨와 '좋은사법세상'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시위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입건된 최씨의 재판은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사진 최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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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62번의 재판 동안 이들은 재판부를 바꿔달라는 기피신청 13회, 각종 이의신청 6회, 항고·재항고 등을 반복했다. 이른바 ‘재판 지연 기술’로 알려진 것들이다. 그 사이 재판장은 13번 바뀌었고, 이들을 거쳐간 변호사만 12명이다. 올해 재판은 지난 25일 딱 한 번 열렸다. 검찰은 “법원·검찰에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 정상적인 재판 진행이 불가능하다”며 “재판부 역시 피고인들이 문제삼을 것을 우려해 판사가 바뀔 때마다 이미 한 재판을 계속 갱신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재판이 늦어지길 바란 게 아니다. 공익을 위한 시위였기에 백절불굴로 무죄를 다투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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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만 14년째…재판 지연 ‘꼼수’ 앞 속수무책 법원
일반 민·형사 사건의 재판 지연 현상은 판사의 태업 탓으로 돌릴 수만 없는 복합적·구조적 원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행사”라고 각종 지연 기술을 동원하는 피고(인)을 상대로 법원에 뚜렷한 제재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간첩 사건이 대표적이다. 30일 청주지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4년을 선고받은 주범 박모(53)씨 등 일명 ‘청주 간첩단’ 사건은 1심 선고에만 3년이 걸렸다. 이들은 변호인을 8번 교체하며 기록 파악을 이유로 기일을 미루고, 재판부 기피신청을 5번 반복하는 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서울중앙지법 ‘자통민중전위’ 사건, 제주지법 ‘ㅎㄱㅎ’ 사건, 수원지법 ‘민주노총 침투 간첩단’ 사건 1심도 같은 상황이다. 국민참여재판 신청이나 재판부 고발, 위헌심판 제청, 관할이전 신청 등이 지연 수단으로 동원됐다. 그사이 간첩 혐의 피고인이 구속기한(6개월) 만료로 풀려났다.
일명 '청주 간첩단'으로 알려진 자주통일충북동지회 활동가 4인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2021년 9~11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던 당시 모습. 연합뉴스 |
하지만 대법원은 “피고인의 재판권을 제한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 지연 기술은 법률시장에서 상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며 “불리한 의뢰인들은 재판을 질질 끌어달라 하고, 재판부도 알면서 모르는 척 넘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사가 소송지휘권을 적극 행사하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도적 소송 지연이나 남용의 경우 적발 횟수에 따라 주의·제재를 주는 법원 내규 등을 고민해볼 시점이 됐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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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선고 5번 밀려 파산…‘갱신’도 ‘검토’도 하세월
재판 지연 때문에 제때 권리 구제를 못 받는 피해자 원고도 많지만 눈물짓는 피고도 다수다. 3년의 이혼 소송 끝에 파산한 아내 A씨가 그런 사례다. A씨는 남편의 사업 빚과 카드 대출을 본인 명의로 떠안은 탓에 이혼 과정에서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런데 수원고등법원 2심 재판부가 선고를 5번 미루면서, 1심 선고한 위자료 3000만원은 소송 제기일(2020년)부터 연 12% 이자가 붙어 눈덩이처럼 불었다.
A씨의 변호사는 “남편 측이 항소이유서를 일부러 늦게 낸 데다, 재판부까지 물어본 내용을 계속 다시 물으며 선고를 5번 미뤘다”며 “지난해 3월 사실상 재판은 끝났는데 최종 확정된 건 올 1월”이라고 말했다. 결국 A씨는 이혼으로 분할 받은 재산 4000만원보다 많은 4150만원을 위자료로 줘야 했다. 지연이자만 1150만원에 달했다.
차준홍 기자 |
법원 사정으로 재판을 끄는 경우도 많다. 매년 2월 법관 정기인사로 재판부가 바뀌면서 하는 재판 갱신 절차가 그중 하나다. 검찰 관계자는 “간이 절차도 가능한데 피고인이 반대하면 그간 증인신문 녹취파일 등을 모두 다시 들어야 한다”며 “수년을 끈 사건은 녹취록을 듣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온 뒤로 사무분담 장기화 제도를 통해 갱신 절차를 최소화하는 등 점진적 개선을 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서류 검토가 유독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 2월 서울서부지법에 상가 임대인을 상대로 보증금 2500만원 반환 소송을 제기한 B씨의 변호사는 “소장을 낸 지 7개월이 넘도록 관할 이송 검토 등을 이유로 송달조차 안 되고 있다”며 “송달부터 12% 지연이자가 가산되기 때문에 원고로선 송달 시점이 중요한데, 매달 연락해서 물어봐도 ‘사건이 많으니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반복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민사 소액사건은 이유도 없이 1년 넘게 기일 지정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차준홍 기자 |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합의부 1심 처리 기간은 2019년 9.9개월에서 2021년 1년을 돌파해 지난해 급기야 15.8개월을 기록했다. 항소심 역시 고등법원 2019년 7.9개월→지난해 10.8개월, 지방법원 8.3개월→11개월로 증가세였다. 형사 재판도 구속기한 제약이 없는 불구속 사건에서 재판이 무한정 늘어지는 경향이 컸다. 불구속 사건의 형사합의부 1심 재판 일수는 2019년 174일→2021년 217일→지난해 228.7일로 매년 늘었다.
구속 사건도 재판 지연이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수노아파 하얏트 호텔 난동’ 사건으로 구속된 피고인 전원이 구속기한을 넘겨 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수도권 공판검사는 “구속기한 6개월 내에 재판이 안 끝나서 징역 10년씩 나올 중범죄 피의자들이 보석으로 풀려날 때 허탈함이 크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
김정민·최서인·양수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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