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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시행 하루 전날 접기도…여론 떠밀린 '땜질입법' 혼란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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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9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 대해 “주식시장 선진화가 되고 난 다음에나 (금투세 시행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통화에서 “이르면 이번주 안으로 의원총회를 열어 결정할 것”이라며 “이미 이 대표가 저렇게 말한 이상 유예론으로 정해질 것 같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이 일찌감치 금투세에 대해 반대해 온 가운데, 제1당인 민주당도 유예로 가닥을 잡으면서 금투세 시행은 또다시 유예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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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 및 개인투자자들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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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정치권이 여론에 떠밀려 ‘땜질 입법’을 남발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여야가 합의한 법도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 시행을 미루거나 내용을 뜯어고치는 경우가 잦다. "정치권이 시장의 예측 가능성과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①과세 유예=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투자로 발생한 소득에 매기는 세금이다. 주식은 연간 5000만원, 기타 금융투자는 250만원이 넘는 소득에 대해 20~25%의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여야 합의로 본회의를 통과해 2023년 1월 시행하기로 했다. 당시엔 “조세정의 개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개미(소액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여야가 2년 유예(2025년 1월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시행 몇 개월을 앞두고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유예에 합의했던 여당은 ‘금투세 폐지’를 내걸고 야당을 향해 “금투세는 이재명세” “금투세 강행하면 주가가 하락할 것”(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이라며 공세를 펼쳤다.

민주당에서도 유예론이 급부상했다. 특히, 지난달 24일 금투세 정책 토론회에서 ‘인버스(주가 하락 베팅) 투자하라’는 발언에 비난이 빗발치자 당 지도부도 유예론으로 기울었다고 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이미 여론에 떠밀려 공제 한도가 높아져 세수 확보 효과도 없다. 또 유예할 거면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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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소득세법 개정)도 세 번째 유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가상자산 과세는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 연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면 22%의 세율로 세금을 물리는 내용이다.

2022년 1월 시행 예정이었으나 시행 직전 한 차례 시행이 미뤄졌다. 2022년 12월 가상자산이 폭락하자 추가로 도입을 2년 미뤘다. 당시 기재위에서 활동했던 한 민주당 전직 의원은 “여론 압박에 밀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국민의힘 소속 송언석 국회 기재위원장은 가상자산 과세를 2025년에서 2028년으로 3년 더 유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철저한 준비 없이 성급하게 과세를 시행하면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다. 한 국회 관계자는 “지난 3년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②일몰 연장

한시적으로 시행한 뒤 자동폐기하기로 한 법들이 기약 없이 연장되기도 한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에 따른 농어촌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10년 기한으로 도입된 농어촌특별세(농특세)는 농민 표심을 의식해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증권거래세·종합부동산세 등 다른 세목의 세액에 일정 비율 부과되는 농특세는 이미 도입 당시 목적을 달성한 데다, 오로지 농·어업 분야에만 활용되는 목적세여서 재정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강보험에 대해 당해 건보 수입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규정한 건강보험 국고지원 제도(국민건강보험법)는 2007년에 5년 한시 조항으로 도입됐으나 4차례 일몰이 연장돼 2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건보 재정수지는 약 11조원의 국고지원금을 빼면 9조7000억원 상당의 적자다. 지난해 연장 논의 당시 “일몰제를 폐지하고 국고 지원을 상시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여야 이견으로 일몰을 10년 늘렸다.

③급조 입법

여론을 타고 급조한 입법도 허다하다. 8월 19일 시행을 하루 앞두고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유예가 결정된 ‘택시월급제’가 대표적이다. 택시월급제는 법인 택시 운전자가 사납금 대신 주 40시간 이상 일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2019년 8월 여야가 합의 처리해 지난달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2년 더 유예하기로 했다.

주 40시간 규정을 놓고 택시업계 노사 모두 “업계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고 반발하며 논란이 커졌기 때문이다. 박복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장은 유예 결정 당시 “이 법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견됐다. 6년을 유예했지만, 더 많은 시간이 지난다 할지라도 이 법이 이뤄질 수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땜질 입법으로 시장은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10개 증권사가 지난 3년간 금투세 도입에 대비해 투입한 외부 컨설팅비와 전산 시스템 구축비, 인건비 등 총 계약비용은 45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금투세 폐지 논의가 힘을 받으며 기껏 마련한 시스템이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책적 일관성이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매몰 비용”이라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법이 계속 변경되는 등 불투명한 상태가 지속되면 시장의 큰 불안 요소가 된다”며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제도화를 결정하고, 법적 안정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정부마다 ‘땜질’ 종부세…야당서도 “차라리 없애자”

중앙일보

정부는 8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기존에 지어진 소형주택을 구입해 등록임대주택으로 등록·임대하는 경우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산정 시 주택 수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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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도모하겠다”며 도입한 종합부동산세법(종부세)은 ‘땜질 입법’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05년 제정된 이 법은 지금까지 13차례나 개정됐지만, 집값 안정보다는 시장 혼란만 부추겼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종부세는 2005년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 중 다주택자에게 부과됐다. “부동산 보유에 대한 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 가격안정을 도모한다”(종부세법 1조)는 목적이었다. 주택 보유는 세대별이 아니라 개인별로 매겨졌다. 여기서 거둔 세금은 지역별 불균형 해소를 위한 명목으로 지방자치단체로 배분됐다.

종부세 도입 후에도 강남 집값이 폭등하자 노무현 정부는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정책을 발표했다. 2005년 8월 이른바 8·31 대책을 통해 종부세 과세대상을 6억 원 초과로 낮추고, 개인이 아닌 가구별 합산으로 부과 기준을 바꿨다. 세금 부과 대상을 대폭 늘림으로써 부동산 매매를 억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6년 서울 아파트값은 24%, 전국 아파트값은 14% 급등했다. 종부세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방세인 재산세가 사실상 부동산 보유세 역할을 하는 상황이라 이중과세라는 논란도 이어졌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와 과세방식을 인별 합산 방식으로 조정했고, 1주택자 대상 공시가격 기준을 다시 9억원으로 완화했다.

문재인 정부 때 종부세는 다시 강화됐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다”(문재인 전 대통령)던 정부는 2018·2019·2020년 세 차례에 걸쳐 다주택자 중과율을 높이면서도 2009년에 만든 ‘공시가 6억원’ 부과 기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1세대 1주택의 경우는 과세 기준을 11억원까지 올렸다. 세 차례 뜯어고치는 동안 집값이 폭등하면서 과세 대상이 크게 늘었고, 중산층의 반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주택분 종부세 고지 인원은 문재인 정부 기간 2017년 33만2000명 2018년 39만3000명, 2019년 51만7000명, 2020년 66만5000명 2021년 93만 1000명 2022년 119만5340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1주택 종부세 과세 인원도 2017년 3만6000명에서 2022년 23만5000명으로 약 7배 늘었다.

강남 3구뿐 아니라 강북에서도 종부세 대상이 된 1주택자가 늘어나면서 징벌적 과세라는 비판이 거세졌다.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전 국회의장도 얼마 전 발간한 회고록에서 “부동산에 이념적으로 접근해 노무현 정권과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며 “집값을 잡으려는 노력이 집값을 폭등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부동산으로 정권을 두 번 뺏긴 것”이라고 썼다.

정부·여당은 이러한 땜질식 종부세를 “폐지 혹은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6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종부세의 주택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하고, 세 부담은 임차인에게 전가된다”며 “폐지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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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공천 갈등' 과 관련해 최고위원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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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야당 일각에서도 “차라리 없애자”는 의견이 나온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5월 한 언론인터뷰에서 ‘실거주용 1주택 종부세 폐지론’을 언급했다. “아파트 가격이 올라 중산층도 종부세를 내는 건 도입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고민정 의원도 중앙일보에 “땜질을 반복해 누더기 법을 만들어 법과 시장의 안정성을 해칠 바에는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성지원ㆍ김정재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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