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1 (화)

"괌에 자위대 주둔, 미·일안보조약 고치자" 이시바 독트린 파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일본의 군사적 지위 강화가 핵심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차기 일본 총리의 외교안보 밑그림을 두고 논란이 번지고 있다. 이시바가 미국과의 핵 공유,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 구상과 함께 미일안보조약 개정 등을 주요 추진 과제로 제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은 물론 미국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회의적인 반응과 함께 미·일간 마찰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중앙일보

지난 27일 이시바 시게루 신임 자민당 총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지통신·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발단은 이시바가 미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에 기고한 ‘일본 외교정책의 장래’란 글이 27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게재되면서다. 이날 이시바는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이겨 총리직을 예약한 상태였다. 30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당초 이시바 측은 총재선거 기간 중 게재할 생각이었으나 ‘차기 총리’의 견해로 게재하기 위해 출고 시기를 조율했다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사실상 ‘이시바 독트린’으로 간주되는 이번 기고문에 일본의 안보 틀을 전면 수정하는 수준의 내용이 담기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개정 우선시하면 동맹 관계에 마찰”



이시바는 특히 기고문에서 국가안전보장기본법 제정과 함께 1960년 체결한 미일안보조약 및 미일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강조했다.

그는 “미·영 동맹에 버금가는 ‘대등한 국가’로서 미·일 동맹을 강화해 지역안보에 기여하는 걸 목표로 한다”며 “미일안보조약을 ‘보통국가’ 간의 조약으로 개정할 조건이 정비됐다”고 주장했다. 미일안보조약에 따르면 미국은 일본에 대한 ‘방위’ 의무가 있지만, 일본은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가 없다. 이를 한미상호방위조약처럼 유사시 서로 돕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게 이시바의 구상인 셈이다.

이시바는 또 “자위대를 괌에 주둔시켜 양국의 억지력 강화를 도모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괌 주둔의 성격과 관련해선 “훈련기지를 두는 것”(지난 29일 후지TV 인터뷰)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미국 허드슨연구소는 지난 27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이시바 시게루 일본 차기 총리의 안보정책 구상이 담긴 기고문을 게재했다. 사진 허드슨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내 여론부터가 신중하거나 부정적이다. 당장 “(전쟁 포기와 교전권 불인정 등을 담은) 헌법 9조를 개정하지 않는 한 미일안보조약 개정은 불가능하다”(마이니치신문)는 의견이 나온다. ‘괌 주둔’과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 관계자는 “주일미군은 유사시 목숨을 걸고 일본을 지키는데, 미국에 있는 자위대 기지가 훈련 목적이라면 미국을 지킬 수 없어 대등하지 않다”며 미국이 이같은 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요미우리신문에 말했다.

미 전문가의 반응도 차갑다. 제프리 호넌 랜드연구소 국가안보연구부 일본부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미국이 SOFA 등의) 재검토에 동의할 가능성은 100% 없다”며 “이시바 정권이 이를 미국과 대화에서 우선 사항에 올리면 동맹 관계에 마찰이 생긴다”고 말했다.



“자위대 괌 파병하려면 개헌해야”



이번 기고문은 물론 총재선거 토론회에서도 언급했던 미국과의 핵 공유, 아시아판 나토 창설 구상도 도마에 올랐다. 이시바는 기고문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사례를 들며 “아시아에 나토처럼 집단적 자위체제가 존재하지 않고 상호방위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기 쉽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를 보완하는 게 아시아판 나토”라며 “중국·러시아·북한의 핵연합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시아판 나토에서도 미국의 핵 공유와 핵 반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미국이 나토 회원국인 벨기에·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튀르키예 등에 전술 핵폭탄을 배치하고 유사시 해당국의 F-16 전투기 등을 투발 수단으로 쓰는 체계를 모델로 삼자는 의미다.

그러나 이런 구상에 대해서도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요미우리는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의 전면적 행사를 헌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시바가 주장하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받아들여야 하며, 이를 위해선 개헌이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중앙일보

미국령 괌의 미 해군기지에 함정들이 정박해 있다. 사진 미 해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이니치는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과의 대립을 결정적으로 만드는 국제기구에 참여할 국가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미국도 아시아판 나토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시바의 구상이 “미국의 속내를 간파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인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너무 앞서나간 측면이 있지만, 미국이 그리는 모습과 다른 건 아니다”며 “미국 입장에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비용과 책임을 확실히 줄일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자위대의 괌 주둔도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유사시에 전진 배치된 일본의 전력을 함께 투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