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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만물상] 미슐랭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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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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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받아도 영광이라는 미슐랭 가이드 맛집 별점을 가장 많이 받은 이는 프랑스 요리사 조엘 로부숑이다. 로부숑은 세계 여러 도시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최고 평점인 별 3개부터 1개까지 도합 32개를 받았다. 그가 ‘미슐랭 효과’를 분석한 적이 있다. “별을 하나 받으면 매출이 20%, 두 개 받으면 40%, 세 개 받으면 100% 오른다”고 했다. 서울 같은 대도시 특급 호텔 식당이 받는 효과는 더 커서, 호텔 식당가 전체 매출과 투숙객 증가로 이어지며 가치가 최소 1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미슐랭 별점에는 짙은 그늘도 있다. 미국 뉴욕에서 미슐랭 별을 받은 식당들을 14년간 추적 관찰했더니 폐업률이 40%였다는 기사가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렸다. 별점을 하나라도 받으면 인터넷 검색이 30% 증가하며 유명세를 누리지만 고급 식당 이미지를 지키느라 식재료비와 인테리어 등에 돈이 더 들고 종업원 임금과 임대료가 덩달아 오르는 등 부작용도 컸다고 했다.

▶서울에서도 영업하는 프랑스 유명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는 과거 프랑스에서 미슐랭 별 두 개와 세 개를 받았지만 결국 부도를 낸 적이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식당은 20년간 유지해온 별 하나 등급을 잃자마자 수익이 70% 추락했고 이듬해 결국 폐업했다. 처음부터 미슐랭 별을 받지 않았다면 폐업으로 몰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미슐랭 등급에 매달리다가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스위스의 별 셋 음식점 요리사는 등급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평점 발표 전날 목숨을 끊었다. 이쯤 되면 ‘미슐랭의 저주’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미슐랭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은 국내 식당은 두 곳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한 곳은 적자가 쌓여 영업을 중단했고 나머지 한 곳도 휴업 중이다. 미슐랭 맛집 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거부하거나 “평가에서 빼달라고 했는데도 낮은 등급에 올려 명예를 훼손했다”며 미슐랭을 고소한 이도 있다.

▶똑같은 음식도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가거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눌 때 더 맛있다. 뇌과학은 맛이 미각뿐 아니라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라는 뇌 부위를 자극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공광규 시인은 맛의 이런 속성을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다’고 시 ‘얼굴반찬’에 썼다. 미슐랭 별 등급이나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음식 사진에 연연할 게 아니다. 마음 맞는 사람과 즐기며 음식을 먹으면, 그곳이 별 만점짜리 식당일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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