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레바논 남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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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수일째 레바논에 강도 높은 폭격을 퍼부으며 인명 피해가 커지자 미국과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향해 21일간 교전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레바논 전역 공습을 이어가는 한편 지상전 가능성을 재차 시사했다.
AP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10여개국과 유럽연합(EU)은 25일(현지시간)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최근 일련의 공습 상황이 “더 광범위한 확전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우리는 외교적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에서 21일간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부를 포함한 모든 당사자들이 이 임시 휴전을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오는 30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이같은 휴전 요구가 논의됐으며, 미국·프랑스·EU·호주·캐나다·독일·이탈리아·일본·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카타르 등이 공동 성명에 참여했다.
복수의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에서 교전이 일시 중지된 3주간의 기간을 활용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협상을 재개하고, 이 협상에서 ‘광범위한 합의’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가자지구 휴전이 타결될 경우 레바논 등 다른 중동 지역으로 전쟁이 번지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융단 폭격에 “미국이 구원의 열쇠”라며 미국 정부가 상황을 통제해주길 주문했던 레바논 정부는 국제사회의 휴전 요청을 환영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휴전 요구에 대해 즉각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7일로 예정된 유엔 총회 연설에서 휴전 제안을 공식적으로 수용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론 더머 이스라엘 전략부 장관이 지난 23일 통화한 것을 계기로 이번 휴전 논의가 시작됐으며, 네타냐후 총리도 이스라엘 측이 휴전 협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전했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 등이 중재하는 하마스와의 휴전 협상에서도 협상 테이블엔 참여하되 하마스가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안을 계속 내거는 등 실제로는 협상 테이블을 걷어찼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레바논 정부로부터 ‘구원의 열쇠’라는 말까지 들은 미국이 상황을 반전시킬 힘을 여전히 갖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년간 주요 전쟁 국면에서 이스라엘의 최대 지원국인 미국의 요구를 번번이 무시해 왔으며, 이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무기 선적을 보류하는 ‘초강수’까지 뒀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여러 차례 네타냐후 총리에게 ‘최후통첩’을 보내고, 심지어는 “헛소리하지 말라”고 고함까지 친 것으로 전해졌으나 네타냐후 총리의 ‘마이 웨이’는 계속됐다. 바이든 정부의 중동 정책이 실패했으며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사실상 통제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미 언론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상전 가능성을 거듭 시사하며 표면적으로는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이날 북부사령부 산하 7기갑여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병사들에게 ‘군화를 신고 적의 땅에 들어가 압도적 전투력을 보여주라’며 지상군 투입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군은 북부 전선 작전을 위해 예비군 2개 여단에 동원령도 내렸다.
네타냐후 총리도 이날 오후 영상 연설에서 “우리는 헤즈볼라가 상상도 못 하는 타격을 가하고 있다”며 “(이스라엘 북부에서 피란을 간) 주민들이 북부로 귀환할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이날도 레바논 전역에 추가 공습을 벌여 최소 81명이 사망했다고 레바논 보건부는 밝혔다. 이스라엘군이 ‘북쪽의 화살’ 작전 개시한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레바논에서 640명 넘게 숨지고 2000명 이상이 다쳤다. 대대적인 공습이 벌어진 첫날인 23일에만 500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불과 사흘 새 레바논 인구의 10%에 달하는 50만명이 집을 떠나 피란민이 됐다.
다만 가자자구에서 1년 가까이 전쟁을 벌였어도 ‘하마스 궤멸’과 ‘인질 구출’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이라는 ‘제2의 전선’까지 감당하기 힘들 것이란 평가도 적지 않다. 헤즈볼라의 군사력이 하마스보다 월등한 데다 이스라엘군의 전쟁 피로도도 누적된 상태다. 가뜩이나 대규모 민간인 희생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우방들을 무시하고 또다시 ‘마이웨이’를 고집할 경우 국제적인 고립도 심화될 수 있다.
영국 가디언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더라도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긴 힘들 것이며, 2006년 헤즈볼라와 벌인 2차 레바논 전쟁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양측은 2006년 34일간 전쟁을 벌이다 유엔의 중재로 휴전했고, 이스라엘은 별다른 침공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헤즈볼라의 거센 반격으로 이스라엘군의 피해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당황한 이스라엘 정부가 물밑에서 헤즈볼라와의 협상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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