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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가계부채 높고 정부부채 낮은 한국…이면엔 ‘각자도생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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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거리에 붙은 대출 광고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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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 미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결정 이후 내달 예정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결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내수 침체 골은 깊어져 가고 있는 요즘 내수 회복을 위해 금리 인하는 필요하지만 금리 인하가 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로 한은은 머리가 아플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는 통화정책운용 공간을 협소하게 만드는 주요 제약조건이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의 문제를 정부 재정정책과 관련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본다.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나드는 가계부채는 이제 웬만큼 큰 일이 생기지 않으면 뉴스도 안 될 정도로 만성화된 사안이 돼 버렸다.





국가 총부채 비율은 선진국 평균과 유사하지만…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정부부채(일반정부 기준)를 합한 것을 국가 총부채(매크로 레버리지, macro leverage)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디피 대비 매크로레버리지 비율은 2021년 기준 320%(가계 108%, 기업 168%, 정부 51.6%)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28%)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그 구성은 확연히 다르다. 기업 부채는 147%로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오이시디 평균은 정부부채 102%, 가계부채 69%의 구성을 보인다. 이에 대해 손종칠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펴낸 논문에서 미국과 유럽의 가계부채는 2010년 이후 꾸준하게 디레버리징되면서 정부부채가 증가하게 된 반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이러한 과정없이 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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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호주, 스위스, 캐나다는 ‘낮은 정부 부채, 높은 가계부채’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부채구조가 형성되어온 과정과 내용은 사뭇 다르다. 이들 그룹에서 ‘높은 가계부채‘가 형성돼 온 원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부동산 자산 가격의 지속적 상승, 낮은 수준의 금리, 자가보유 주택에 대한 열망, 장기의 주택담보대출제도, 소비자 대출의 지속적 증가, 가계부채 확대보다 더딘 경제성장 등이다. ‘낮은 정부부채’를 형성하게 된 공통 요인으로는 잘 갖춰진 재정규율과 건전 재정(혹은 균형재정)의 정책기조, 안정적인 경제성장, 풍부한 천연자원(캐나다, 호주 등), 강력한 재정당국의 존재, 효율적인 조세체계 등이 꼽힌다.



하지만 공통점 못지않게 차이점이 존재한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지점은 이들 그룹에 속한 나라들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이 나타난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가계부채부터 보자. 금융투자협회(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계자산 중 비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4.4%로 미국(28.5%), 일본(37%). 영국(46.2%), 호주(61.2%) 등을 압도한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앞서 설명한 공통의 요인들 이외에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이 가계자산구성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높은 가계부채’를 갖게 된 원인이다.



과거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정권별로 수요억제정책과 공급확대정책을 번갈아 구사하면서 시장을 안정화시키지도 못하고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더욱 더 오르거나 가계부채가 크게 증가하는 결과를 자주 낳았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담보인정비율(LTV) 규제, 주택허가거래 지구 지정 등 수요억제를 강하게 진행했던 진보 정부 때는 억제된 주택수요가 풍선효과를 동반한 가격상승을 크게 가져왔고, 실수요와 투기수요를 자극해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불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주택공급 확대에 좀더 주력한 보수 정부 때는 주택공급 확대(심지어 ‘빚내서 집사라’는 경제수장의 격려도 있었다!)를 통한 시장안정화 정책이 결국 분양/청약/특별공급 등의 형태를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늘려 가계부채를 끌어올렸다. 최근만 해도 신혼부부 특례, 청년보금자리론, 노후주택 재건축 완화(신도시/구도시) 등 다양한 형태의 주택공급제도와 50년 최장기 주택담보대출의 신규도입 등을 통한 주택공급 확대 정책은 주택실소유자에 대한 주택공급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줄지라도 본질적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것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택임대차 제도인 전세제도 역시 고가의 임대 보증금을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가계 부채 비율 상승에 일조했다. 또 간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안에는 자영업자 대출이 19.1% 포함되어 있어 높은 가계부채의 문제가 바로 ‘가게’ 부채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나라들과의 차이점이다.





낮은 정부부채도 높은 가계부채의 한 원인





정부의 재정정책 방향 역시 특징을 형성하는데 일조하였다. 이 그룹에 속하는 호주, 스위스, 캐나다 역시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가계부채 비율을 높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부동산 뿐만 아니라,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출, 교육비, 의료비 등의 용도로 가계가 부채를 떠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나라가 과거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의 재원배분 결과 정부재정은 낮고 민간부문은 부채가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2020년 현재 9.2%로 OECD 국가들 9번째로 낮고 국공립병원 비중은 6.2%, 국공립학교 비중은 55.2%로 OECD 국가들 중 최저수준인 것이 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낮은 수준의 정부부채 비율은 국민 개개인의 ‘각자 도생의 삶’과 깊는 상관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으며 이는 정부 재정에 추가적인 압박으로 이어져 연금, 의료, 사회 복지에 대한 지출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인구가 작고 해외 이민이 높아 인구압박에 대한 부담을 상쇄할 수 있는 호주, 캐나다 등과는 매우 대조적인 상황이다. 스위스의 경우 인구고령화의 진행이 빠른 편이지만 노인을 위한 연금시스템이 가장 잘 발달되어 있어 정부재정의 부담이 우리보다는 크게 작다. 호주 역시 마찬가지로 연금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안전망과 연금제도가 취약한 편이기 때문에 가계가 은퇴, 교육, 의료비 조달 등 개인저축과 부채에 더 많이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앞으로도 가계부채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살펴본 그룹에 속한 나라들도 가계의 부동산 자산 보유에 따른 가계부채비율의 증가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 이외의 부문에서는 정부가 재정으로 해결한 측면이 크다. 따라서 정부재정이 해야 할 부분은 명확하다.



우선,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을 전향적으로 주거 서비스(housing service) 안정화 정책으로 관점과 정책 내용을 크게 바꿔야 한다. 주택공급을 늘리더라도 분양/대출을 통해 자가보유를 획일적으로 높이는 것보다 안정적인 주거 서비스 확대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낮은 정부부채비율을 보인 나라들의 공통점은 이미 사회복지와 연금제도가 좋아서 정부의 대폭적인 재정지출을 통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작다. 또한 조세부담률이 낮지 않아 큰 폭의 정부부채의 증가가 없더라도 필요한 재정을 동원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아직도 성긴 사회안전망과 보장수준이 낮은 연금제도 등 정부가 재정으로 두텁게 지원해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 동안 19~21%에 서 머무르고 있는 조세부담률로는 이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부채 비율이 상승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가계부채도 이미 높은 수준인데 정부부채마저 큰 폭으로 상승할 경우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이전에 정부 재정정책의 전향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증세와 관련된 것이든 분야별 재원배분의 대폭적 개선이든지 무엇이든지 간에든 말이다. 허송세월하고 있는 정책의 시간이 매우 아쉽다



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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