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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목)

우리는 모두 한때 ‘장국영의 시대’를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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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 팬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엮인 소동 그린 연극 ‘굿모닝 홍콩’

조선일보

‘장국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은 배우를 추모하러 찾아간 홍콩에서 유혈 진압에 피 흘리면서도 “홍콩에 자유를!” 외치는 우산혁명 시위대와 조우한다. 연극 ‘굿모닝 홍콩’의 한 장면. /국립정동극장 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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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우리 관객은 전설적인 영화 두 편을 만났다. 5월엔 ‘영웅본색’, 12월엔 ‘천녀유혼’이 한국에서 개봉했다. 주윤발(저우룬파·69)을 따라 입에 성냥개비를 물고 롱코트를 입었고, 학교 교실엔 왕조현(왕쭈셴·57) 책받침과 연습장이 넘쳐났다. 홍콩 영화의 전성시대를 연 두 영화의 공통점은 아직도 많은 이가 그리워하는 배우 장국영(레슬리 청·1956~2003)’이 출연한다는 점.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은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한때 장국영의 시대를 살았다”고 했다.

서울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 중인 연극 ‘굿모닝 홍콩’은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4월 1일 만우절, 장국영의 흔적을 따라 ‘성지 순례’처럼 홍콩을 여행하던 한국의 ‘장사모(장국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휩쓸리면서 겪는 이야기다.

연극은 아예 ‘영웅본색2′의 마지막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우삼(존 우·78) 감독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듯, 권총에서 끝없이 총알이 나가고 총에 맞으면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다가 쓰러지는 총격전이 이어지고, 장국영이 전화 부스에서 주윤발의 품에 안겨 죽는 그 장면까지 배우들이 천연덕스럽고 유머러스하게 재연한다. 객석은 폭소의 도가니. 실은 ‘장사모’ 회원들은 장국영 추모 영상을 찍던 중이었고, 경찰 단속에 걸리고 만다. 알고 보니 홍콩 경찰은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다. 중국 공산당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저항, 우산 혁명 시위가 홍콩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장사모 회원들은 홍콩의 명소들을 옮겨 다니며 계속해서 시위대와 조우한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는 1997년 홍콩 반환에 대한 홍콩인들의 두려움과도 맞물려 있다. 우산 혁명 시위는 중국 정부가 ‘반환 뒤 50년간 일국양제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홍콩을 중국의 억압적 권위주의 체제에 복속시키려는 데 맞선 홍콩인들의 저항이었다. ‘장국영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연극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홍콩과 홍콩 영화, 그리고 그 영화들에 얽힌 관객 각자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시절, 추억의 총체를 소환한다.

장사모 회원들이 영화 ‘천녀유혼’의 1980년대 아날로그 특수 효과를 무대 위에 재연하는 장면은 기발한 연극적 상상력이 빛난다. 박장대소하는 소리로 극장이 들썩인다. 피 흘리며 시위에 나선 홍콩 사람들과 장사모 회원들이 함께 장국영의 목소리로 익숙한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을 부를 땐 코끝이 찡해진다. 27일까지, 전석 2만원.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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