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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단독] 주지가 방장 불신임…‘양대 권력’ 충돌한 해인사에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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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지난해 2월 해인사 주지 혜일스님(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조계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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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의 상징적 사찰인 경남 합천 해인사가 최고 어른 격인 방장 선출을 앞두고 내부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주지 현응스님이 성폭력 등 사건으로 ‘산문출송’(승려가 큰 죄를 지었을 경우 승권을 빼앗고 절에서 내쫓는 제도)당하더니, 이번에는 주지가 방장을 불신임하는 등 사찰의 양대 권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오는 30일 방장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를 앞두고 후보별 세력 결집 움직임 속에 돈봉투 살포가 이뤄지는 등 혼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해 법보사찰로 불리는 해인사는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국내 3대 사찰로 통한다. 성철, 고암, 혜암, 법전 등 조계종 종정을 가장 많이 배출했고, 승려 수도 많아 무게감이 큰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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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임기 10년의 해인총림 방장에 선출된 원각스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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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표출된 계기는 해인사 주지 혜일스님이 지난달 9일 교구종회를 열어 가결한 방장 원각스님 불신임안이다. 본사 주지가 총림 방장을 불신임하는 일은 조계종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초유의 일. 주지가 사찰의 행정과 살림을 책임진다면, 방장은 총림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최고 어른에 해당한다. 임기 10년의 방장은 본사 주지 추천권을 지니며, 말사 주지 임면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혜일 주지가 의장인 교구종회는 원각 방장이 승풍을 실추시켰다는 점 등을 불신임 이유로 들었는데, 그 이면엔 지난해 현응스님이 성폭력 등 사건으로 쫓겨난 사태를 두고 그를 주지로 임명한 원각 방장의 책임도 있다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해인사 사정에 밝은 조계종 한 관계자는 “현 원각 방장 쪽의 약한 고리를 공격해 방장 선출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교구종회의 방장 불신임은 상징적 의미를 지닐 뿐, 구속력은 없다.



원각 방장 지지 세력은 즉각 ‘원로중진 특별대책위원회’를 꾸려 “방장 불신임안은 수행풍토 파괴 행위”라며 반발했다. 이들은 혜일 주지의 사퇴를 요구하고, 총무원 호법부에 ‘승려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다. 이들은 방장 불신임 배경에 선각스님의 ‘해인사 장악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오랜 기간 방장 비서실장과 주지로 재직하는 동안 ‘실세’로 통했던 선각스님은 해인사 내부 분란의 복판에 있었다. 그러다 2017년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자로부터 수십억원의 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절에서도 산문출송됐다. 현 대구 도림사 회주인 선각스님은 “나와 무관한 일인데 왜 나를 끌어들이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선각스님과 해인사 주지 혜일스님은 모두 지난해 11월 분신 입적한 자승 전 총무원장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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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해인총림 방장 선출을 앞두고 지난 8월19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해인총림 문도 대표자 간담회’. 참석자들에겐 여비 명목으로 100만원씩 지급됐다. 참석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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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 불신임 세력은 지난달 ‘해인총림 문도협의회’를 띄워 세력 결집에 나섰다. 특히 지난달 19일, 이달 2일과 9일 등 세차례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간담회를 열어 산중총회 운영방법을 설명하는 등 표 단속에 나섰다. 간담회에 참석한 승려들에겐 여비 명목으로 각각 100만원씩 지급했다. 1차 간담회에 참석한 한 스님은 “여비라고 하면서 100만원을 주길래 받았다”고 말했다. 해인사 주요 보직을 맡은 한 스님은 “통상적으로 스님들께 교통비, 거마비 정도는 드리는 게 관례”라며 “총림 화합과 발전을 위한 간담회였지 선거를 위한 자리가 아니어서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이 스님은 “1차 85명, 2차 150명, 비구니 대상 3차 간담회 50명 등 모두 280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여비 명목 2억8000여만원에 호텔 대관, 저녁 식사 비용 등을 고려하면 최소 3억원 이상 든 것으로 추정된다. 해인사 보직을 맡은 또 다른 스님은 돈의 출처에 대해 “해인사 예산이 아니라 모금함을 통해 후원금도 받고 자발적으로 다 (충당)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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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해인총림 방장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가 열리는 해인사 보경당. 해인사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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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계종 내부 법률인 종법은 “산중총회 개회일 전 3개월 이내에 일체의 금품 및 재산상의 이익 제공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간담회 식순에는 ‘산중충회 운영방법 설명’ ‘산중총회 소집 요구서 작성’ 등이 있어, 방장 선출을 위한 산중충회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조계종 총무원 내부에 설치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한 위원은 “산중충회 이후면 몰라도 사전에 그런 돈을 주는 건 관행이 될 수 없다”며 “옳지 않고, 위법한 행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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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방장실로 쓰이고 있는 퇴설당(堆雪堂)의 ‘퇴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눈덩이’라는 의미다. 1899년 경허스님이 한국불교 중흥을 내걸고 선원을 개설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해인사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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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보경당에서 열릴 예정인 방장 선출 산중총회는 ‘산중 고유의 방식’으로 진행하도록 종법에 명시돼 있다. 방장은 다수의 뜻을 모아 추대하는 게 그간의 관례였는데, 지난 2015년엔 원각스님과 대원스님이 치열하게 맞붙으면서 전례 없이 투표를 통해 선출됐다. 이번에도 두 스님의 양자대결로 가는 흐름이다.



해인총림 방장실로 쓰이고 있는 퇴설당(堆雪堂)의 ‘퇴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눈덩이’라는 의미다. 1899년 경허스님이 한국불교 중흥을 내걸고 선원을 개설하면서 지은 이곳엔 ‘크게 죽어야 산다’는 의미의 ‘사중득활’(死中得活)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지난해 현응 주지가 불미스럽게 쫓겨난 이후 해인총림 사부대중(수행승과 재가신도 전체를 이르는 말)은 ‘해인총림 참회문’을 발표했다. 1년 남짓 지난 지금 해인총림엔 또다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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