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9 (금)

이슈 로봇이 온다

[스타트업 리포트] 'AI가 피자도 만든다' 피자에 AI와 로봇 결합한 임재원 고피자 대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토핑 정확성 확인하고 피자 굽는 AI와 로봇 개발
6개국 200여 매장 운영하며 피자 수출 "세계 1위 피자업체 목표"

"왜 혼자서 먹을 수 있는 피자는 없을까."

때로는 작은 의문에서 혁신이 일어난다. 국내에서 1인용 피자를 창시한 신생기업(스타트업) 고피자는 창업자 임재원(35) 대표의 의문에서 시작됐다. 그는 혼자 생활하는 1인 가구가 늘어나는데 여럿이 함께 먹는 대형 피자만 파는 것을 문제로 봤다. 그에게는 이런 의문이 혁신의 출발점이고 새로운 시장이었다.

그는 단순히 피자 크기만 줄인 것이 아니다. 피자에 정보기술(IT)을 결합해 인공지능(AI)과 로봇이 피자를 만드는 시스템을 개발하며 푸드테크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기술에 대한 임 대표의 자부심은 인터뷰에 동석한 인물을 통해 여실히 나타났다. 그는 언론에 한 번도 노출한 적이 없다며 이범진 기술총괄(CTO)을 소개했다. CTO는 IT기업에 흔하지만 식품업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직책이다.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이 CTO는 AI 전문가다. 임 대표가 CTO를 영입한 이유가 곧 고피자의 미래이기도 하다. 서울 경희궁길 고피자 사무실에서 임 대표가 보여줄 혁신의 방향을 짚어 봤다.
한국일보

1인 피자의 대명사인 고피자를 창업한 임재원 대표가 서울 경희궁길 사무실에서 자체 개발한 오븐인 '고븐'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옆에 놓인 고븐은 매장용 피자 오븐을 전자레인지 크기로 줄인 기기다. 임은재 인턴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푸드트럭으로 출발


싱가포르경영대와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을 나온 임 대표는 싱가포르의 광고대행사를 거쳐 국내 물류 스타트업에서 일하다가 2016년 1인용 피자를 파는 푸드트럭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최소 자본으로 1년간 준비한 아이디어를 구현하려고 푸드트럭을 시작했죠. 피자를 워낙 좋아해 혼자서 먹을 수 있는 1인용 피자를 만들어 4,900원에 팔았어요."

그가 만든 1인용 피자는 모양부터 특이해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이 모양만 봐도 알 수 있도록 원형이 아닌 타원형으로 만들었죠. 지금 회사 로고도 타원형 피자 모양이에요."

운도 따랐다. 마침 서울시에서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밤도깨비야시장' 프로그램에 선발돼 크게 성공했다. 입소문을 타고 1인용 피자가 인기를 끌며 푸드트럭 운영 1년 만인 2017년 회사를 설립하고 서울 대치동에 매장을 냈다. 1평짜리 매장이 1년 뒤 13평으로 커지면서 투자를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의 틀을 갖췄다.

'빠삭 도우'의 성공


임 대표는 처음부터 "누구나 쉽게 피자를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기업"을 목표로 했다. "공항, 편의점, 주유소 등 피자 매장이 없던 곳에서도 피자를 팔고 싶었죠. 그래서 직영 매장과 가맹점은 물론이고 기업 간 거래(B2B)를 통해 편의점 등 유통망에도 진출했어요. 현재 국내외 매장이 약 200곳이죠."

고피자 매장은 먹는 공간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다른 업체들은 피자를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려 배달 위주로 판매해요. 하지만 우리는 완성 시간을 대폭 줄여 현장에서 먹을 수 있도록 했죠. 국내 매출의 30%가 매장 판매에서 나와요."

이를 위해 그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빠삭 도우'라는 이색 피자 빵(도우)을 만들었다. "피자 공정 중 사람 손이 가장 많이 가는 분야가 도우 반죽이에요. 많은 곳이 미리 반죽을 만들어 냉동 보관했다가 전날 밤 꺼내 해동하죠. 이후 녹은 반죽을 펴서 피자를 만들어 시간이 오래 걸려요. 우리는 이 과정을 생략하도록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식빵처럼 약간 단단하게 80% 정도 익힌 초벌(파베이크) 반죽을 매장에 공급해요. 매장에서 양념과 재료를 얹어 바로 구워 팔 수 있죠."

미리 초벌 반죽을 굽다 보니 수분이 날아가 바삭한 식감이 난다. 그래서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빠삭 도우로 통한다. 하지만 씹을 때 물렁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단점일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분이 덜 날아가도록 개발한 초벌 반죽을 4분기에 선보여요."
한국일보

고피자의 임재원(오른쪽) 대표와 이범진 CTO가 AI와 로봇을 결합한 피자 제조 기기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븐 등 제조설비까지 직접 개발


고피자는 놀랍게도 대부분 제조설비까지 직접 개발한다. 그래서 CTO가 중요하다. 도우 반죽을 만드는 충북 음성 공장에 설치된 자동 반죽 기계도 직접 만들었다.

특히 피자를 빠르게 굽는 '고븐'이라는 오븐을 2017년 독자 개발했다. "적은 전기량으로 열을 최대한 대류시키는 고븐을 만들었어요. 빠삭 도우의 식감을 살리려면 고븐을 사용해야죠."

고븐은 매장이 뜨거워지지 않도록 열 방출을 최소로 줄인 특허 기술이 적용됐다. "화덕이나 오븐을 켜놓으면 열이 나와서 매장이 더워요. 고븐은 열 방출이 적어 매장에 설치해도 공간이 뜨거워지지 않죠."

고븐은 지난 5월 전자레인지 크기의 '고븐 미니'로 진화했다. "커다란 매장용 고븐을 편의점에 설치할 수 있도록 줄였어요. GS25 요청으로 1주일 만에 개발했죠."

고븐 미니는 GS25 편의점에만 약 2,000대 팔렸다. 덕분에 GS25 편의점에서도 고피자를 판매한다. 피자 판매 외 기술 매출이 일어나는 셈이다. "안정적 기술 매출로 피자 개발에 투자해 브랜드를 키우는 선순환이 일어나죠."

AI와 로봇이 피자 만들어


설비 개발의 핵심은 AI와 로봇으로 피자를 만드는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과 '고봇 스테이션'이다. 미국에서 특허를 받은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은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AI가 피자 토핑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냉장고 크기의 조리대다. 이를 개발한 것은 '점바점'을 없애기 위해서다.

점바점이란 같은 상표의 피자가 매장마다 맛이 다른 경우를 말한다. 점바점은 모든 피자업체의 고민이다. "매장 직원들이 피자에 얹는 재료량이 일정하지 않아요. 심지어 재료를 한두 가지씩 빼먹기도 해요. 그 바람에 매장마다 맛이 달라요."

카메라가 달린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은 4년간 개발한 AI가 피자에 올라가는 재료 및 양념 양과 가짓수를 측정해 100점 만점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 정확한 토핑으로 매장마다 균일한 맛을 유지하는 것이 이 기기의 핵심이다.

평점이 낮은 매장 직원에게는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알려준다. 이를 위해 매장 직원의 피자 제조 과정이 영상으로 녹화돼 보관된다. 직원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고객을 위한 일이라면 타협하지 않아요. 그래서 직원들이 좋아하지 않아도 도입하죠."

이를 위해 2018년 이 CTO가 합류했다. 이 CTO는 2017년 일본에서 열린 로봇경진대회 '로보컵'에서 우승한 로봇과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가다. "식품에 로봇과 AI 기술을 적용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임 대표의 제안을 받고 합류했죠."

경기 일산공장에서 만드는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은 내년 말까지 전체 매장에 보급될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피자업체에도 이를 판매할 계획이다. "월 이용료를 받는 구독형 서비스로 제공할 생각이에요. 외식업은 승자독식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다른 피자업체들을 경쟁사가 아닌 잠재적 고객으로 봐요. 최근 피자알볼로와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 적용 시험을 하고 있어요."

2022년 개발한 고봇 스테이션은 피자를 굽고 자르는 로봇이다. 오븐에 결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이 로봇은 선반에 토핑된 피자를 얹으면 오븐에 밀어 넣어 굽고 익으면 꺼내서 잘라준다. "매장 직원은 토핑과 포장만 하면 되죠."

임 대표는 현재 국내외 일부 매장에 설치된 고봇 스테이션도 내년부터 외부에 판매할 계획이다. "고봇 스테이션을 사용하면 매장 직원을 덜 고용해도 되기 때문에 다른 피자업체들의 관심이 많아요."
한국일보

고피자가 인도에 개설한 50번째 매장인 코라망갈라점. 고피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해외 진출한 K피자


고피자는 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일본 등 해외 6개국에 진출해 'K피자'로 통한다. 이 가운데 집중하는 곳은 인도와 태국이다. 인도에만 50여 개 매장을 운영한다. "인도는 인구가 많고 경제성장률이 높은 큰 시장이어서 장차 5,000개 매장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해외에서는 피자 외 라면 떡볶이와 이색 피자를 함께 판매한다. "한국 특성을 살린 불닭치킨피자, 고추장불고기피자, 강남불고기피자, 치즈를 갈아서 눈처럼 보이게 만든 서울스노우피자 등 50종 이상의 메뉴를 선보였어요."

고피자는 해외 매장을 모두 직접 운영한다. 유통업체들은 해외 진출할 때 위험을 줄이기 위해 현지 업체가 대신 판매하는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한다. 그런데 임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해외 진출하려면 최소한 3년 동안 현지에서 일하며 국가별 특성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만큼 시간과 인내, 투자가 필요하죠. 하지만 현지 업체를 통해 대리 진출하면 이해관계의 충돌로 3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깨지죠."

최근 해외에서도 가맹점 문의를 받고 있다. "북미, 호주, 동남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가맹점 문의가 들어와 3, 4개국을 대상으로 연내 계약을 검토 중이에요."

세계 1위 피자업체 목표


두 군데 공장을 운영하며 해외 포함 600명 직원을 고용한 고피자는 지난해 250억 원 매출을 올렸고 올해 400억 원 매출이 목표다. 연 매출이 75% 성장하며 지난 5월부터 흑자 전환했다. 투자는 GS와 CJ, 미래에셋, 태국 CP그룹, 캡스톤파트너스, DSC인베스트먼트 등에서 총 650억 원을 받았다.

올해 임 대표는 매출 확대를 위해 또 다른 시도를 한다. 1인 피자에서 벗어난 대형 피자 개발이다. "연말에 대형 피자를 국내에 내놓기 위해 시험 중입니다. 이미 인도에서는 타원형의 대형 피자를 만들고 있어요. 1인 피자 시장에서 자리를 굳혔으니 대형 피자로 확대해도 승산이 있다고 봐요."

매일 피자를 먹는 임 대표의 꿈은 세계 1위 피자업체가 되는 것이다. "세계 1위인 미국 도미노피자가 전 세계 2만 개 매장을 갖고 있어요. GS25가 국내 1만8,000개 매장이 있으니 여기에 고븐 미니를 설치하면 매장 숫자로는 따라잡을 수 있죠. 앞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피자를 먹고 싶을 때 고피자를 떠올리게 하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