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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1차 자료로 ‘중국인 이야기’ 썼지만 역사는 ‘감상용’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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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국인 이야기’ 10권을 완간한 김명호 전 성공회대 교수가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한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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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나라가 커서 그런지 사람들이 매우 산만해 보입니다. 실제로도 산만하죠. 저도 좀 산만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중국인들을 보면서 많은 흥미를 느낍니다. 중국인들은 어제와 오늘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또 약간의 속임수에도 매우 뛰어나죠. 그런 중국인의 본질을 가장 잘 파악한 게 1980~90년대에 주한 및 주중 미국 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입니다. 그 사람이 리덩후이 타이완(대만) 총통에게 말하기를, 국가 지도자로서 일을 제대로 하려면 약간의 속임수가 있어야 하는데 제일 중요한 건 타이밍이라고 했거든요.”



김명호 전 성공회대 교수가 2012년에 첫 권이 나온 ‘중국인 이야기’ 제10권을 내면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연재 기간만 17년, 1000명이 넘는 등장인물에 2천여장의 사진으로 중국 근현대사를 종횡한 대작을 일단락한 그는 24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책 완간과 관련해서 특별한 감회는 없다”며 “다음 작업으로는 중국의 법조인들과 재판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재 17년에 등장인물 천명 넘어
“국공전쟁 장수 린뱌오 가장 인상적
무기 휴대한 적 없고 총소리 싫어해”



그는 ‘중국인 이야기’ 전체 10권에 등장하는 1천여 명의 인물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 린뱌오를 꼽았다.



“수천 년 중국 역사에서 단 한 명의 장수를 꼽으라면 린뱌오(임표)를 들겠습니다. 국공전쟁의 승리는 린뱌오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무기를 휴대한 적이 없고 총소리를 싫어했습니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도 싫어했어요.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남긴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죠. 타이완쪽 인물로는 장징궈(장경국)를 들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타이완의 국부죠. ‘철혈의 장경국’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만.”



반면 그는 “가장 교활한 인물이 저우언라이”라는 말도 했다. “저우언라이는 흔히 ‘인민의 총리’라는 말을 듣지만, 저우언라이 때문에 문화혁명이 더 오래 계속됐어요. 저우 때문에 죽을 사람이 안 죽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안 죽을 사람이 더 많이 죽었습니다.”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숨겨져 있어
역사를 사실로 믿으면 판단 오류”
중국 법조인 주제로 다음 책 쓸 계획





‘중국인 이야기’ 10권은 1979년 중국과 미국의 국교 수립과 덩샤오핑의 미국 방문, 만주척식주식회사(만척)를 앞세운 일본의 만주 ‘개척’, 만주에서 배우이자 가수로 활약한 일본계 문화 혼혈아 리샹란(이향란), 1949년부터 1992년까지 타이완 국민당의 1당 독재를 일컫는 ‘백색공포’ 시기 등을 거쳐 2008년에 타이베이에서 세상을 뜬 공자의 77대 직계종손 쿵더청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20여 년간 중국을 오가며 모은 자료와 수집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방대한 저술을 마무리한 김 전 교수는 “이 책에 쓴 건 모두 일차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면서도 “역사는 그저 감상용이지 믿을 건 못 된다”는 뜻밖의 말을 했다.



“무엇이든 (중요한 건) 숨겨져 있습니다. 만방에 까발려진 걸 사실로 믿게 되면 판단에 오류가 생기게 됩니다. 중국은 야사와 정사의 구분이 없습니다. 중국 역사 도서 전시회에 가면 ‘삼국연의’나 ‘수당연의’가 정사로 취급됩니다. 중국에서 정사란 것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뜻인 것 같아요. 팩트가 꼭 권위를 가지는 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과 역사의식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령 테러리스트 김구와 역사의식을 가지고 보는 김구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인 이야기’는 김명호 전 교수의 첫 책이다. 그는 “루쉰 역시 원래는 글을 쓸 줄 몰랐고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 놓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쳤다고 한다. 마오쩌둥도 비슷한 말을 한 걸 어디서 본 적이 있다”는 말로 문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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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전 성공회대 교수. 한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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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간담회에 동석한 출판사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는 “한길사에서 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전 15권은 지금까지 400만권 정도 팔렸는데, 1995년에 그 책을 처음 낼 때부터 서양의 로마 제국에 대응하는 제국 중국의 이야기 역시 책으로 낼 생각을 했다. 이 책 어느 곳을 들춰 보든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끝없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과 중국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과 관련한 질문에 김명호 전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도 중국을 잘 모르고 중국도 한국을 잘 모릅니다. 지금 미국과 중국 관계도 최악인데, 미국은 얼마전부터 중국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 예일대에서 사마천 ‘사기’와 두보 시집 주석본을 방대한 규모로 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산시성과 협업이라고 해요. 한국인들은 중국에 가면 꼭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짜여진 계획표에 따라 움직이곤 합니다. 그러나 중국을 제대로 알려면 낯선 데를 많이 가 보고 목표 없이 이것저것 둘러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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