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좌 월송스님, 아들 사칭 가능성 시사
“김태신, 생전 유전자검사 거부”
화분에 물주는 월송스님과 스승 일엽스님. <민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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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애와 신정조론을 주창한 최초 신여성이자 당대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 ‘김일엽’ 혹은 일엽스님(1896~1971). 그는 30대 후반 출가해서도, 삶을 마치고서도 이슈의 중심에서 비껴가지 않았다. ‘나는 일본인 오타 세이조와 일엽스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라고 주장한 일본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의 이름이 김태신이다. 그는 일엽스님이 돌아가신 후에 책을 내고, 자신의 사연을 여기저기 떠들어댔다. 이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던 수덕사 일엽 문중이 최근 ‘꼭꼭 묻어둔 이야기’(민족사 펴냄)를 출간하며 처음으로 침묵을 깼다.
일엽스님의 손상좌 월송스님이 구술하고 작가 조민기 씨가 정리한 이 책에서 제자들은 “수십년간 말을 아낀 것은 김태신의 주장이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일엽스님)를 팔아 한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잘된 일’이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23일 서울 종로구에서 연 출간 간담회에 참석한 4대손 경완 스님(김일엽문화재단 부이사장)은 “김태신이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며 “책에 쓰지는 않았지만 스님은 출가 전 딱 한 번 출산했으나 유산했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월송스님은 건강상의 이유로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책을 정리한 조 작가는 “수덕사 스님들을 인터뷰하고 여러 조사를 한 결과 김태신이 사칭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 손상좌인 월송 스님이 김태신에게 유전자 검사를 제의했으나 그는 화를 낸 후 발길을 끊었다”고 설명했다. 김태신은 2014년 세상을 떴다. 그로부터 1년 후 김태신 딸이라고 밝힌 여자가 수덕사를 찾아와 문중의 땅과 재산을 요구해 소송까지 갔으나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엽스님을 따라다닌 소문엔 1965년 발매돼 히트곡이 된 ‘수덕사의 여승’의 실제 주인공이라는 것도 있다. 가수 송춘희가 부르고, 한명훈 작곡한 이 노래는 “속세에 두고 온 임 잊을 길 없어/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는 가사로 대중들은 일엽스님이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밤마다 외로움에 흐느끼는 모습을 상상했다. 또 ‘두고 온 님’이 도대체 누구냐며 스님을 찾았다.
이에 대해 일엽스님은 1965년 펜을 들어 “세속에서 지내던 습기의 집적인 그 생각을 다 소멸시키는 공부를 하는 중이, 세상에 남긴 애인을 못 잊고 생각하여 마음의 노래가 눈물로 스며 나온다면, 자신은 벌써 중으로써 타락했음을 직감하고 눈물진 가사 장삼을 벗어 거룩한 승의를 욕됨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사와 같이 감상적이고 저속한 노래가 인기를 끌어 감명 깊게 듣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나를 회복하는 공부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대중이 많다는 증명이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황당해했다.
이처럼 일엽스님이 소문과 가십의 주인공이 된 것은 당시 파격적인 사상과 행보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잡지인 ‘신여자’를 창간하고 발행인이 됐으며, ‘정조는 움직이는 것’이라는 ‘신정조론’을 펼쳐 보수 남성들의 공분을 샀다. 여기에 ‘남편을 버린 이혼녀’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자신에게 ‘일엽(一葉)’이라는 필명을 안긴 춘원 이광수와도 한때 연인 관계였다.
세상의 온갖 비난과 조롱에 대해 일엽스님은 인욕 수행으로 여기며 다투지 않고, 변명하지 않았다. 책은 수행자 일엽스님의 진짜 모습을 조명한다. 살아 생전에도 아들이라 사칭한 이들이 책을 팔며 다닐 때 스님은 “호들갑 떨 것 하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일엽이라는 이름 석 자가 뭐라고? 그 이름이 대체 뭐길래? 그 이름 가치가 얼마나 된다더냐? 나를 빙자하여 한 사람이 이 힘든 생을 버티고 한 남자가 장사하고 돈을 벌어 그걸로 생활을 할 수 있으면 내가 한 사람을 구제한 것이 아니냐?”
꼭꼭 묻어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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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절 일엽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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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묻어둔 이야기’ 출간간담회에 참석한 조민기 작가와 경완 스님.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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