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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사설]성급한 ‘두 국가’ 논쟁, 정작 정부는 색깔론밖에 할 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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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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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19일 9·19 공동선언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현시점에서 통일 논의는 비현실적”이라며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는 헌법 3조의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고, 통일부도 정리하자고 했다. 그는 “통일을 유보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합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 전 실장은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화두로 정치했고, 문재인 정부 때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그런 그가 “통일, 하지 말자”며 두 국가론을 들고 나오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야권에선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이종석 전 장관이 임 전 실장과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는 반면 더불어민주당 박지원·정동영·김민석 의원은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주장에 대해 “평화와 통일이라는 겨레의 염원에 역행하는 반민족적 처사”라며 임 전 위원장 입장과 거리를 뒀다. 여당에선 “북한의 주장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식의 색깔론이 쏟아졌다.

임 전 실장이 ‘두 국가론’을 제기한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대화는 끊기고 군사적 긴장은 치솟는 중이다. 대북 적대·흡수 통일 기조인 윤 대통령의 8·15 메시지는 남북 대치와 긴장만 더욱 높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1991년 남북합의서 규정마저 폐기하는 건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자의 주도적 발언권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남북을 두 개의 국가로 인정한다고 해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으로 치닫는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지 의심스러울뿐더러, 지금 어렵다고 헌법 영토조항까지 삭제하자는 건 미래의 통일 논의까지 닫아버리는 매우 섣부른 주장이 될 수 있다.

임 전 실장의 ‘두 국가’ 주장에 논란이 따르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이고 평화·통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모색하는 생산적 논쟁이 되어야지, 색깔론으로 덮을 게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북한 오물풍선과 미사일, 대북 확성기 소리가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니는 불안한 상황이다. 남북 대화 한번 없이 아무런 실효적 대응도 못하는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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