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진 영풍 고문(왼쪽 사진)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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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간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로 동업을 이어왔던 영풍과 고려아연이 주말에도 경영권을 두고 날 선 공방을 이어갔다. 고려아연은 영풍이 대표이사 2명이 모두 구속된 상황에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나서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부실 경영을 지적하는 MBK 주장이 타당하다는 한 전문가의 글이 글로벌 독립 리서치 플랫폼에 게재됐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22일 영풍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대표이사 2명이 모두 구속된 특수 상황에서 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서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고려아연은 “사망 사고와 중대재해 문제로 최근 대표이사 2명이 모두 구속된 상태에서 도대체 누가 어떻게 결정을 내린 것인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영풍은 각자 대표이사 2명 모두 지난 8월말 구속됐다. 현재 이사회에는 이들을 제외한 3명의 비상근 사외이사만 남아 비상경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영풍은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 등의 결정은 적법한 이사회 결의에 따른 것”이라며 “이사회 구성원은 이사로 이뤄지며, 이사회 구성원이라면 사내이사나 사외이사 구분 없이 이사로서의 지위를 동등하게 보유하게 된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최 회장 측은 고려아연과 영풍정밀 지분 확보를 위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기로 하고 관련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추석 연휴 직후 자사 주요 주주인 한화그룹의 김동관 부회장과 회동했다. 한화그룹이 향후 경영권 분쟁에서 고려아연 측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한화그룹은 주요 계열사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7.76%를 보유하고 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부실하게 기업을 운영했다고 집중 공격하고 있다. MBK는 이날 글로벌 독립 리서치 플랫폼 ‘스마트카르마’에 올라온 ‘고려아연 경영에 대한 MBK파트너스의 4가지 주요 우려 사항들’이라는 제목의 리서치 노트 내용을 공개했다. MBK에 따르면 이 노트에는 “고려아연의 부실 투자와 수익성 악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자사주 교환으로 늘어난 유통주식수 등 MBK의 3가지 우려 사항들은 타당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MBK는 전날 입장문에서는 “고려아연 이사회가 제대로 기능했다면 5600억원 원아시아파트너스 출자,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에 활용된 투자, 완전자본잠식인 이그니오홀딩스 5800억원 인수는 가당치도 않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영풍과 MBK는 기업의 재무 상태를 자의적 기준에 따라 왜곡하며 이른바 ‘통계조작’을 이어가고 있다”며 “공신력을 가진 신용평가사의 분석 결과 대신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데이터를 입맛에 맞게 가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가 평가한 당사의 장기신용등급은 ‘AA+/안정적’이며, 단기신용등급은 ‘A1’”이라고 했다.
앞서 MBK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아연이 비정상적 기업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무분별한 투자를 단행해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우려되는 상황에 몰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고려아연은 “당사 유동성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악마의 편집을 했다”며 “올해 6월말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36%, 차입금의존도는 10%로 매우 튼튼한 재무구조를 보여주고 있다”고 반박했다.
고려아연과 함께 MBK·영풍의 공개매수 대상인 영풍정밀도 나섰다. 영풍정밀은 지난 20일 영풍이 MBK와 맺은 주주 간 계약으로 인해 영풍법인이 손해를 봤다며 장형진 영풍 고문과 MBK, 김광일 MBK 부회장, 영풍의 사외이사 3인을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했다. 고려아연 계열사인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하고 있다.
또 고려아연 사외이사 7인 전원은 전날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을 적극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배포했다. 이들은 “고려아연 경영진은 그동안 사외이사의 건전한 감시와 견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건전하게 운영됐다”며 “사모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인해 고려아연의 기업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풍그룹은 고 장병희·최기호 회장이 공동 창립했다.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운영하고, 장씨 일가가 영풍그룹 전체와 전자 계열사를 맡아 75년간 공동경영 체제를 이어왔다. 현재 두 집안의 고려아연 지분은 최 회장 측 33.99%, 영풍 장형진 고문 측 33.13%로 비슷하다. 영풍이 MBK와 함께 약 2조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 7.0∼14.6%를 공개매수한 뒤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겠다고 나서면서 분쟁이 본격화됐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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