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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월)

급류 휩쓸린 노인 사망…유네스코 유산도 붕괴 시킨 물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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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호 태풍 ‘풀라산’이 약화한 열대저압부 영향으로 전국 곳곳에 폭포비가 쏟아지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급류에 휩쓸린 80대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되고, 하천이 넘쳐 주변이 물바다가 되자 60대 남성이 농막 지붕 위로 피신하기도 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 일부 붕괴되고, 산사태·침수·강풍 피해까지 잇따르면서 1500명이 넘는 주민은 집을 떠나 긴급 대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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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경남 김해시 주촌면 내삼천이 폭우에 불어나면서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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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휘쓸린 노인 숨져…하천 범람에 차 버리고 대피



22일 각 지자체·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35분쯤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화저수지에서 8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남성이 자택에서 실종된 지 약 17시간 만이다. 남성은 집 앞 배수로에 빠진 뒤, 급류에 휩쓸려 약 1㎞ 떨어진 저수지까지 떠내려 간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당시 집 인근은 배수로에서 불어난 물로 침수된 상태였다. 이날 장흥 지역에는 시간당 70㎜의 매우 강한 비가 쏟아졌다.

실종 신고는 전날(21일) 오후 6시 27분쯤 이 남성의 아들이 했다. 전남소방본부 관계자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배우자가 집에 올 때, (실종된) 할아버지가 매번 마중을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날 보이지 않자, 센터 직원이 할아버지 아들에게 연락하면서 신고가 접수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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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진 지난 21일 경남 김해시 신문동의 한 농막 지붕 위에 60대 남성이 고립돼 있다. 사진 경남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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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진 지난 21일 경남 김해시 신문동에서 소방당국이 60대 남성(왼쪽)을 구조하고 있다. 이 남성은 주변이 물에 잠기자 농막 지붕 위로 대피, 고립됐었다. 사진 경남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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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오후 4시 18분쯤 경남 김해시 신문동에서는 농막 지붕 위에 고립된 60대 남성을 소방당국이 구조했다. “사람 살려”라는 남성의 목소리를 들은 주민이 소방에 신고한 지, 약 1시간 만이었다. 앞서 차로 이동 중이었던 이 남성은 주변이 물에 잠기자, 급히 차를 버리고 인근 농막 지붕 위로 몸을 피했다고 한다.

당시 이 일대는 낙동강 지류인 조만강이 오전 11시쯤 범람하기 시작하면서 침수됐다. 사람 키를 넘길 만큼 물에 잠긴 곳도 있었다. 이 때문에 김해 주민 39명도 대피했고, 강 하류 부산 강서구의 저지대 지역 주민들도 대피했다.



‘역대급 폭우’ 2시간 반 만에 하천 수위 2m↑



이날 조만강(정천교 지점) 수위는 불과 2시간 30분 만에 2m 넘게 치솟았다. 낙동강홍수통제소에 따르면 조만강 수위는 오전 9시 3.27m에서 오전 11시30분쯤 5.8m(11시30분)까지 올랐다. 이 지점 최고 수위(계획홍수위)인 5.77m를 삽시간에 넘어섰다. 조만강 인근 김해 내덕동 한 도로에서도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도로 가드레일을 붙잡고 있던 시민 5명이 경찰한테 구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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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진 경남 김해시에서 '대성동고분군' 서쪽 사면이 일부 붕괴됐다. 대성동고분군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등록한 국내 7개 가야고분군 중 하나다. 사진 김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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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에는 지난 20일부터 이날까지 이틀 동안 426.8㎜의 물폭탄이 쏟아졌다. 김해는 인근 창원과 함께 2009년 7월 이후 가장 많은 비가 내리면서 일 강수량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일 김해 금관가야의 대표 유적지인 ‘대성동고분군’의 서쪽 사면 일부분(약 96㎡) 무너져 내렸다. 대성동고분군은 지난해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세계유산으로 등록한 국내 7개 가야고분군 중 하나다. 시는 이튿날(21일) 추가 붕괴를 막기위해 붕괴된 사면에 천막을 덮고, 시민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창원시도 도심 곳곳이 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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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부산시 부산진구 연지동의 한 주택 담벼락 등이 무너지면서 2명이 집 안에 고립돼 소방대원이 구조하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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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8시 45분쯤 부산 사상구 한 도로에서 가로 10m, 세로 5m, 깊이 8m 가량의 대형 땅꺼짐 현상(싱크홀)이 발생해 도로에서 배수 지원을 하던 삼락119안전센터 배수 차량과 5톤 트럭이 빠져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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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5시34분쯤 부산시 부산진구의 한 주택에서는 폭우로 담벼락과 지반이 무너져 내리면서 2명이 집 안에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같은 날 오후 7시 21분쯤에는 부산 금정산을 오르던 등산객 2명이 불어난 계곡물에 한동안 산 속에 갇히기도 했다.



땅 꺼지고, 옹벽 기울어…강풍에 정전 피해도



도로가 훼손되고, 땅 꺼짐 현상도 이어졌다. 21일 오전 10시 부산진구의 한 도로에서는 맨홀에서 역류하는 물 때문에 아스팔트가 산산조각 났다. 이보다 앞선 오전 8시45분쯤 부산 사상구의 지하철 공사장 인근 도로에서는 가로 10m·세로 5m·깊이 8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트럭 등 차 2대가 빠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행정당국은 구멍 난 도로를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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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5시 45분쯤 전남 광양시 옥룡면 한 도로에서 나무가 쓰러져 전신주가 파손돼 있다. 뉴스1=광양소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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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서 집중호우로 인해 마을이 침수되어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주택에 고립된 주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뉴스1=소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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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 피해도 잇따랐다. 21일 오후 3시 31분쯤 제주시 애월읍에선 강풍에 고압선이 끊어져 588가구가 정전됐다가 복구됐다. 같은 날 오후 4시 52분쯤 애월읍의 한 도로에서도 신호등 고정 와이어가 분리돼 안전조치가 이뤄졌다. 이날 제주에선 최대순간풍속 기준 한라산 삼각봉 초속 28.4m, 추자도 23.3m, 윗세오름 21.1m, 고산 20.6m, 가시리 19.6m 등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21일 오후 10시 25분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는 폭우와 산사태로 높이 5m의 옹벽이 빌라 쪽으로 기울었다. 옹벽의 추가 붕괴를 우려한 빌라 주민 54명은 야밤에 긴급 대피했다.



1500여명 대피…하늘·바닷길, 철길도 막혀



행정안전부의 ‘국민안전관리 일일상황’ 자료에 따르면, 비가 쏟아진 지난 20일부터 22일 오전 5시까지 전국 7개 시·도(부산·충북·충남·전남·경북·경남)에서 1501명이 대피했다. 이 중 682명은 아직도 귀가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농경지 4116ha가 물에 잠겼다. 도로침수 107건, 토사유출 21건, 주택침수 170건 등의 시설 피해도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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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폭우로, 34개 항로를 운항하는 여객선 47척은 아직까지 발이 묶였다. 항공기 16편도 통제된 상태다. 경부선 일부와 경전선·동해선 광역철도 모든 구간의 열차 운행이 차질을 빚었지만, 22일부터 재개됐다. 국립공원 16곳의 493개 구간과 지하차도 32곳, 둔치주차장 141곳, 하천변 3561곳의 접근은 차단된 상태다.

장흥·김해·제주=안대훈·최충일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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