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민련 사무처장 출신 민경우가 본 2국가론
시민단체 ‘길’의 민경우 대표가 20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본지와 만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통일하지 말자’ 발언 등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민 대표는 과거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맡아 NL계열 통일운동에 참여했다.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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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우(59) 시민 단체 ‘길’ 대표는 1995년부터 10년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맡아 민족해방(NL) 계열의 ‘통일 운동’에 참여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4년 2개월간 수감 생활도 했다. 민 대표는 20일 본지 인터뷰에서 임종석(5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날 ‘9·19 평양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하지 말자”며 제기한 ‘남북 2국가론’에 대해 “김정은이 제시한 2국가론이 한국 제도권 정치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임 전 실장의 연설을 어떻게 봤나.
“불과 5년 전에 통일 운동을 하겠다고 한 사람이 ‘통일하지 말자’며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그러면서 통일부 정리, 국가보안법 폐지까지 언급했다. ‘북한의 입장은 일단 맞다’고 보는 심리로 보인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개인적으로 통일 운동을 하면서 이런 사례를 자주 봤다.”
-작년 말 김정은이 ‘적대적 2국가 선언’을 하고 대남 기구를 폐지하자 한국에서도 범민련 남측본부가 해산했다.
1989년 방북한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 - 1989년 8월 15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 임수경(왼쪽)씨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가 방북을 마치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고 있다. 임씨 방북은 당시 전대협 의장이었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주도했다. /조선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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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정체성 삼았던 정치인이 ‘반통일’을 주장했는데.
-통일 운동에서 북한 입장이 그만큼 중요했나.
“2001년 금강산에서 6·15 축전을 하기로 했다. 김대중 정부가 (1997년 이적 단체 판결을 받은) 범민련 남측본부가 의장단에 들어가면 행사를 불허하겠다고 통보했다. 범민련 내부 회의에서 ‘반정부 투쟁을 하자’는 등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그때 북한에서 팩스가 한 장 들어왔다. ‘이번엔 양보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논쟁은 그것으로 끝났다. 범민련 북측본부 명의로 온 팩스지만 실제론 북한 통일전선부가 내린 지시라고 보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통일 운동을 할 때 북한과 연계가 있었나.
20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민경우 대표가 최근 이슈가 된 '두 국가론'과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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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운동을 하면서 북한에서 지시를 받은 적이 있나.
“1995년부터 10년간 범민련 남측본부에서 일할 때 일본의 조총련 정치국장과 많게는 한 달에 15번씩 통화했다.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정치국장이 북한에 의견을 묻고 팩스를 받아 우리에게 보내줬다. 북한의 지도가 일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왜 적대적 2국가론을 내걸었다고 보나.
-국내에서 2국가론 주장이 이어질까.
“국내에서 2국가 주장은 극소수였다. 일부 인사가 칼럼을 썼지만 반향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임 전 실장 발언으로 이 이슈가 정치권에 들어왔다. 북한도 한국 내 여론을 보면서 정치권이든 다른 채널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계속 펼칠 거라고 본다.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한국과의 관계도 이번에 한 차례 정리하겠다는 의도로 봐야 한다. 북한은 일단 사업을 하기 시작하면 크게 한다.”
-국내 NL계 통일 운동 진영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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