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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오늘과 내일/김윤종]취임사마다 ‘검찰 중립’ 외쳤던 총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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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윤종 사회부장 


“사건이 공정하게 처리되는지, 죄를 지은 사람이 합당한 벌을 받고 있는지, 걱정하시는 국민도 계신다.”

19일 열린 46대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심우정 신임 총장은 이같이 말했다. 이어 “외부 영향이나 치우침 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른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들이 믿을 수 있게 하자”고 했다. ‘증거와 법리’를 강조한 심 총장 표정에선 정권 중반에 임명된 검찰총장으로서의 부담감이 느껴졌다. 신임 총장의 목표와 약속을 취임사에 담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탓이다. 전임 이원석 총장 역시 2년 전 취임사에서 한비자의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성역은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디올백 수수 의혹 수사 등을 질질 끌어 임기 내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36년간 총장 3명 중 1명만 임기 채워

검찰총장 2년 임기제가 시행된 1988년 이후 임명된 총장 25명의 취임사를 쭉 훑어 봤다. 시대에 따라 주요 수사 대상과 척결 방안이 각각 다르게 담겼지만, 검찰의 중립성·공정성·신뢰 회복을 언급한 부분은 취임사마다 유사했다. 일부는 ‘Ctrl+V’(붙여넣기)로 내용을 옮긴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영삼 정부 첫 검찰총장인 박종철 전 총장은 1993년 3월 취임사에서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국민을 두려워하며 소신껏 검찰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 의중을 읽지 못한다는 평가와 수사 부진이 겹치면서, 박 전 총장은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했다. 2005년 4월 취임사에서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을 뿌리내리겠다”고 했던 김종빈 전 총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동국대 교수 구속에 대해 헌정사상 첫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되자 같은 해 10월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8월 취임한 한상대 전 총장은 “검찰의 깨끗함과 투명함을 강화시키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는 일명 ‘봐주기 구형’으로 구설에 올랐고 대검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후배 검사들의 검란(檢亂)으로 1년 3개월 만에 퇴진했다. 채동욱 전 총장은 2013년 4월 취임식에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 결연한 의지를 가지겠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 초기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혼외자 논란에 휘말려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했다. 윤 대통령 또한 검찰총장 시절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겪었고 2021년 3월 사퇴 후 곧장 대통령 후보가 됐다. 36년간 25명의 총장 중 2년 임기를 마친 이는 9명(36%)에 불과했다.

‘검찰 중립 방벽 되겠다’는 약속 지켜야

심 총장도 선배 총장들처럼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레임덕과 함께 각종 의혹이 터지면서 정권을 직격하는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수남 전 총장의 경우 자신을 임명한 박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이달 24일 디올백을 건넨 최재영 씨에 대한 수사심의위원회 결과가 나오면 김 여사 처분을 결정해야 한다. 12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2심에서 전주(錢主)로 기소된 손모 씨가 방조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유사한 역할을 한 김 여사 처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수사 등 검찰 중립성을 평가할 사건이 수두룩하다.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심 총장은 정권에 맞설 수도, 비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취임사를 떠올리길 바란다. 심 총장 취임사는 이렇게 끝맺는다. “검찰의 중립성 독립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든든한 방벽이 될 것을 약속드린다.” 물론 총장 의지만으론 한계가 있다. 정치권 외압, 대통령 인사권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이 약속이 지켜진다면 ‘검찰 중립성·독립성’이란 단어는 향후 신임 총장들의 취임사에선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

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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