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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동아광장/허정]수출 호황에도 국내 경기는 왜 불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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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수출 계속 좋아 낙수효과 있어야 할 상황

현재의 내수 부진 현상, 수출로는 설명 안 돼

구조개혁-규제혁신 지연 인한 투자 위축 탓

동아일보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매해 추석 명절 기간에 단골로 등장하는 언론 문구 중 하나는 ‘민족 대이동’이라는 용어인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도로를 메운 차량이 600만 대가 넘는다고 하기도 하고, 전국적으로 3700만 명이 닷새 동안 이동을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추석 때가 되면 여러 지역에 살던 가족, 친지들이 모여 우리 사회, 교육, 경제, 그리고 정치 관련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필자도 이번 추석에 여러 친지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특히, 관심 있게 경청했던 주제는 내수 부진 혹은 경기 침체에 대한 걱정이었다.

사실 내수 부진과 경기 침체는 다소 다른 개념으로 봐야 한다. 내수 부진은 전통시장에서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 수준이 높아 지갑이 얇게 느껴질 때, 그리고 자영업자들이 손님들이 줄어 판매량이 줄어들 때 쓰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의미로는 기업들이 고용 계획을 줄인다거나, 설비투자나 건설투자 계획을 연기 혹은 철회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도 사용된다.

그러나, 내수 부진과 경기 침체 현상을 동일시하는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경기 침체는 실질 경제성장률이 2개 분기 이상 마이너스를 기록할 때 쓰이는 다소 엄밀한 정의를 가진 경제학 용어다. 물론 내수 부진이 단순히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실제로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한 이슈라서 전문가들의 정확한 분석과 예측이 필요하고 정부 당국이 미리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할 필요는 있다.

우리나라의 거시경제적 변동 현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에는 두 가지 중요 키워드가 있다. 수출과 금리다. 단순하게 보면 수출이 증가하고 금리가 내린다면 국내 경기가 좋아질 것이고, 수출이 줄어들고 금리가 올라가게 되면 국내 경기는 내려앉게 된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단순 논리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그 효과에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치 열이 나는 사람에게 감기약을 먹였다고 해서 곧바로 열이 내리지 않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열이 내리는 현상과도 같다. 즉, 현재의 경기 상황을 판단할 때도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봐야 한다.

우선, 수출은 2024년 내내 계속 좋은 상태다. 정부의 올해 목표는 7000억 달러인데, 현재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추세로 매월 수출 성과가 좋다. 이렇게 수출이 증가하면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하여 기업의 성과가 근로자와 관련 기업 및 지역경제로 파급되는 소위 낙수효과가 시차를 두고 발생하게 된다. 우리나라 수출은 작년 4분기부터 계속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 수출의 낙수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내수 부진 현상은, 혹은 경기 침체 가능성은 수출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렇다면 고금리 정책 때문일까? 현재 한국은행의 정책금리는 3.5%다. 사실 고금리는 기업들의 금융비용을 높이고, 사업자들의 대출 수요와 투자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내수 부진과 어느 정도 관련지어 볼 수 있다. 하지만, 내수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은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 3.5% 금리는 2023년 1월에 설정되어 벌써 21개월째 7개 분기 연속 유지되고 있는 정책금리다. 따라서 기업이나 사업자들도 이 기간에 맞도록 이미 비즈니스 모형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이 금리가 단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내수 부진의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인과성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현재 3.5%의 정책금리는 2020년 코로나19 이후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망 교란에 의한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요인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이미 2021년 8월부터 10차례에 걸쳐 꾸준히 금리를 높여 온 결과다. 그리고 2023년 1월부터 현재까지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및 중동지역 분쟁 등 지속적인 대외 충격에 의한 국내 인플레이션 발생을 방지하고 또한 최근 가계부채 급증 현상에 대처하기 위함으로 해석해야 한다.

요컨대 수출이 잘되고 있고 고금리 정책 유지로 인플레이션 현상을 어느 정도 눌러주고 있기 때문에 수출과 금리로는 내수 부진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현재 경제가 안 좋다고 우리가 느끼는 이유는 좀 더 근본적 원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구조 개혁과 규제 철폐가 지연되어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일 때 기업의 투자는 위축된다. 그리고 의료, 교육, 주거, 복지 등 광의의 사회안전망에 불안을 느낄 때도 소비자들은 지출을 꺼리게 된다. 정부의 경제 개혁 방향에 재점검이 필요한 때다.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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