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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맨 처음 정보공개청구를 한 건 2004년. 당시 수강 중이던 수업 과제의 일환이었다. 그때까지 정부가 하는 일에 구체적인 궁금증을 가진 적도, ‘국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나도 봐야겠다’고 정보공개를 청구한 적도 없었다. 그렇게 없던 궁금증을 쥐어짜했던 첫 번째 정보공개청구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몇 년째 하고 있던 터널공사에 대한 거였다. 결론적으로는 나의 첫 정보공개청구는 담당 공무원의 허술한 처리가 겹치면서 자료를 받지는 못했다.
그때 정보공개 청구서를 작성하며 가장 쓰기 어려웠던 건 ‘청구 사유’ 입력란이었다. 아니 궁금해서 청구하는 건데, 왜 궁금하냐고 물어보면 어쩌란 말인가, 청구 사유를 잘 써야 정보를 공개 받을 수 있는 건가, 내가 어디 사는 누구며, 지금 무슨 수업을 듣고 있고, 이 수업의 과제로 제출해야 하는 정보공개청구가 나의 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구절절 다 설명해야 한다는 건가? 학생이 정보공개청구했다고 혼내면 어떡하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청구 사유를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오히려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이런 취조식의 질문에 답하기 싫어서라도 ‘다시 정보공개청구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해 정보공개법이 개정되면서 정보공개 청구서에 청구 사유를 적는 란은 없어졌다. 그 덕분에 정보공개운동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때가 떠오르는 건 지금 윤석열 정부의 “악성 정보공개청구 방지를 위한 정보공개법 개정” 추진 때문이다. “정보공개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난 악의적이고 비정상적인 정보공개청구”는 금지하겠다는 게 법 개정 추진의 골자다. 정보공개청구의 의도에서 ‘악의와 비정상’을 골라내겠다는 정부의 개정안을 보며 내가 얼마나 순수한 의도를 가진 선량한 정보공개 청구인인지 굳이 설명해야 했던, 그래서 다시는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20년 전 그때가 떠오른 것이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은 인권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이 법에 따라 모든 국민은 국가에 정보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국가는 공개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요청한 정보가 법에서 정한 8가지 비공개 대상에 해당할 때뿐이다. (정보공개법 전문 보기)
이때 청구인이 누구고, 이 청구한 정보가 왜 필요한지는 공개 여부를 판단하는데 고려 대상이 아니다. 청구를 한 사람이 학생이든, 기자든, 사업가든, 범죄자든 상관 없다. 당연히 공개 받은 정보를 갖고 기사를 내든, 연구를 하든, 사업을 하든 상관 없다. 20년 전 ‘청구 사유’를 밝히는 란이 없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청구 목적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법의 취지를 반영한 결과다.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법안이 자동 폐기 되자, 지난 7월 30일 행안부가 직접 같은 내용으로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9월 10일에는 양부남 의원이 같은 취지의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양부남 의원의 법안은 청구권의 박탈을 “정보공개 담당자를 괴롭힐 목적으로 대량 또는 반복적으로 청구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로 그동안의 정부안보다 조금 구체화되기는 했지만, 청구인의 의도나 목적을 판단해야 하는 주관적 해석을 통해 정당한 정보공개 요청마저 거부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정부의 뜻대로 개정되면, 비공개도 좋으니 접수처리를 해달라는 소송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정부의 법 개정안을 우려하는 이유는 지금도 이미 주요 사안,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의 뜻대로 법이 개정되면, 검찰 특활비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는 반복적인 정보공개청구로 해석돼 종결처리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비공개하지 말고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이 아닌, 비공개라도 괜찮으니 접수 처리를 해달라는 소송을 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비공개라도 해야 공개하라는 소송도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
사실 정부가 주장하는 ‘악성 청구’를 차치하더라도, 지금 정보공개법에는 제도적 한계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공공기관의 자의적이고 고의적인 비공개 남발이다.
검찰 특활비처럼 공개 판례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사안에 대해 비공개 통보가 반복된다. 이때 정보공개청구한 시민은 행정소송을 하는 것 말고는 취할 방법이 없다. 요청한 정보에 대해 공공기관이 정보가 없다며 ‘정보부존재’라고 허위 답변을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향성은 이른바 힘 있는 기관, 시민의 삶에 밀접한 영향이 있는 기관일수록 더 심해진다. 지난 9월 12일 열린 행정안전부/시민사회 정보공개법 개정 관련 간담회에서 시민사회 참석자들이 지금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상황을 설명하며 이를 막기 위한 처벌 조항과 알권리를 보장할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한 이유다.
알권리는 단지 안다는 것을 넘어서 행복을 추구하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위한 또 다른 전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알권리를 ‘권리를 위한 권리’라 부른다. 정보공개청구권의 제한은 자칫 시민의 삶을 위험으로 내몰거나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정부의 비밀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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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공직자 재산공개 30년, 정보공개법 25년을 맞는 해였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정보 은폐는 여전하고, 공직자 재산형성의 투명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에 경실련, 뉴스타파, 세금도둑잡아라, 정보공개센터, 참여연대,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6곳은 '재산공개와 정보공개제도개선 네트워크'(줄여서 재정넷)를 결성했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알권리 침해의 상황을 고발하고, 투명하고 책임 있는 정부를 위한 법안도 제안했다.
하지만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지 25년을 넘기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보공개와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함께 논의해도 모자란 지금, 정부는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는커녕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국가의 정보 은폐를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실은 다른 기관은 다 공개하는 ‘공무원 명단’도 공개하지 않으며, 검찰은 법원의 판례도 무시하고 특활비 자료의 비공개로 버티고 있다. (기사 보기 : 대통령실, "재판 져도 다시 비공개") https://newstapa.org/article/D7TXC
지금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할 정부가 국민의 알권리를 훼손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지금 법을 바꿔서까지 알권리를 제한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한번 정보공개법 조문을 살펴본다. ‘모든 국민은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가 있고 ‘공공기관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뉴스타파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zinim@opengir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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