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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시사컬처]오타니호가 태양계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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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역사 최초 50홈런 50도루 넘어

야구의 한계 벗어난 미지의 영역으로

아시아경제

이재익 SBS라디오 PD·소설가


보이저라는 이름의 우주 탐사선이 있다. 1977년에 나란히 쏘아 올려진 1호와 2호는 여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인류가 만든 물체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최장 거리 통신에 성공했으며, 가장 먼 곳에서 지구를 촬영하기도 했다. 초당 15km 이상의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보이저호는 2018년에 태양계를 벗어나 미지의 영역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오타니라는 이름의 야구선수가 있다. 2013년에 데뷔한 그는 여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투수와 타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일본 리그에서 팀을 우승시키고 MVP까지 받았다. 메이저리그로 넘어온 뒤에는 선발 투수로 10승과 타자로 40홈런 이상을 함께 달성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으며 스포츠 전 종목 최고 금액의 계약을 따냈다. 만장일치로 2번의 MVP를 받은 유일한 메이저리거이기도 한 그는 야구의 한계를 벗어나 미지의 영역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팔꿈치 부상으로 타자로만 뛰는 이번 시즌에도 오타니는 새로운 기록을 추가했다. 우리 시간으로 지난 8월 31일, 한 시즌에 43개의 홈런과 도루를 함께 해낸 야구 역사상 최초의 선수가 된 것이다. 한 시즌 40홈런 40도루라는 기록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는 외국인 용병인 에릭 테임즈가 딱 한 번 달성했고 국내 선수는 아직 없다. 일본에는 한 명도 없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금지약물 복용자를 제외하고 단 3명만이 성공했는데 오타니는 최소 경기로 기록을 세운 뒤 계속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훔쳐 결국 50홈런 50도루라는 야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을 달성했다.

오타니의 기록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개인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라 팀 승리에 보탬이 된다는 점이다. 도루는 실패하면 공격의 맥을 끊어버리는 부작용이 있다. 이전 기록 달성자들이 도루 성공률이 떨어지는데도 계속 도루를 시도한 데 비해 오타니는 90%가 훌쩍 넘는 성공률을 자랑한다. 홈런이 팀 승리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분야든 전례 없는 활약을 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문화적 현상이 생긴다. 미국 LA에서 오타니의 날이 지정되고, 오타니 기념품을 증정하는 날에는 수만 명의 관중이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도로에 늘어서고, 소속팀 다저스 경기는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었다. 오타니 신드롬이라고 불리는 문화적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다. 오타니는 TV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고 오타니가 모델인 광고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광복 이후 오타니만큼 우리나라에서 호감을 얻은 일본인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진 일본인 대부분은 비난이나 경쟁의 대상이었으니. 이 또한 오타니가 만들어낸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까?

오타니처럼 문화현상이라고 할만한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 프로야구에서도 엄청난 스타가 등장했다. 작년까지 최고의 스타였던 이정후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후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를 메운 김도영 선수다. MVP는 확정적으로 받을 것 같은 그는 30홈런 30도루를 이미 달성했고 40홈런 40도루 기록이 가시권에 있다. 성공하면 한국인 선수로는 최초가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오타니는 51홈런 51도루 김도영은 37홈런 39도루를 해낸 상황이다. 오타니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것처럼 김도영 역시 위대한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시즌이 끝난 후 오타니 호는 어디까지 가 있을까? 날이면 날마다 오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세기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재익 SBS라디오 PD·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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