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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이슈 김정은 위원장과 정치 현황

[단독]김정은 "中은 숙적"…한국도 간 中건군행사에 北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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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주관하는 모습. 조선중앙TV,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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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사이에서 예전과 다른 파열음이 표출되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중국을 "숙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한국을 포함, 주요국이 대부분 참석한 중국의 공식 행사에도 북한 외교사절을 보내지 않는 등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19일 중앙일보에 "최근 김정은이 자신들에게 압박을 강화하는 중국을 겨냥해 '숙적'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7월 중국 주재 외교관들에게 '중국 눈치를 보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7월 31일자 1·4면 보도〉

김정은이 중국을 "숙적"으로 부른 맥락과 발언을 한 대상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중국이 최근 북한의 밀수 행위 단속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김정은이 사용하는 '1호 물품'까지 압류한 뒤 반환 요청을 거부하는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고 있어 이에 대한 반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중앙일보 9월 13일자 1·5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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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이 개발한 7.62㎜ 저격수보총과 5.56㎜자동보총을 비롯한 저격무기를 살펴보고 생산 방향 등 중요과업을 제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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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김정은의 발언은 당과 군 조직 내에서 체계적으로 전파되며, 일종의 행동 지침으로 작용한다. 김정은이 직접 중국을 숙적으로 부른 무게감이 작지 않은 이유다. 향후 북한의 대중 기조에도 이런 '1호 가이드라인'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실제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개행사 참석을 두고서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한 소식통은 "중국 국방부가 지난 7월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건군 97주년 리셉션을 열었는데, 주중 북한 무관들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행사에는 중국 중앙군사위원회의 류전리(劉振立) 연합참모부 참모장과 먀오화(苗華) 정치공작부 주임 등이 참석했고, 둥쥔(童軍) 중국 국방부장(장관)이 축사를 했다. 중국군 주요 수뇌부가 참석한 큰 행사에 중국 주재 북한 무관단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두고 과거 중국의 각종 기념식에 적극적으로 참석했던 전례와는 온도 차가 크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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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방부가 지난 7월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창군 97주년을 기념하는 리셉션을 진행하는 모습. 신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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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중국 정부는 북한은 물론 자국에 주재하고 있는 모든 국가의 무관단에 초청장을 발송했다고 한다. 특히 한국도 초청을 받아 중국 주재 우리 무관단이 참석했다. 한국도 참석한 행사에 혈맹인 북한은 대표단을 보내지 않은 셈이다.

또 다른 소식통은 "북한은 중국 본토뿐 아니라 해외의 여러 중국 대사관에서 개최된 중국 건군 기념일 행사에도 자국의 공관원들을 참석시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중국 역시 북한이 주최하는 공식 행사 참석에 소극적인 기류다. 왕야쥔(王亚军) 북한 주재 중국 대사는 북한이 정전협정 체결 71주년을 맞아 지난 7월 27일 밤 평양체육관 광장에서 진행한 6·25전쟁 상징 종대 행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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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7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북한은 전승절이라 주장) 71주년을 맞아 수도 평양에서 진행한 조국해방전쟁 시기 상징종대들의 기념 행진의식 모습.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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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정권수립기념일(9·9절) 행사에는 펑춘타이(馮春臺) 대사대리를 보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왕 대사는 국내(중국 내)에서 휴가 중"이라고 밝혔지만, 왕 대사가 굳이 북한이 매해 기념해온 최대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 임지를 비우고 개인 휴가를 떠난 것 자체가 통상적이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김정은이 중국을 "숙적"으로 표현하며 반감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가정보원 1·3차장을 지낸 한기범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2015년 연초에 "미·일은 100년 숙적이나, 중국은 5000년 숙적이다. 중국 없이도 살아갈 수 있으니 중국에 사소한 양보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소개했다.('북한의 대남 적대정책과 대외정책 연계' 보고서, 3월 발표)

당시는 한·중 관계에 비해 북·중 관계가 상대적으로 소원했던 시기다. 2014년 7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자 김정은이 이를 '배신행위'로 간주했다는 게 한 전 차장의 설명이다. 이후 김정은은 2015년 대외정책 목표를 '대러 관계 확대‧발전'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 또다시 중국을 "숙적"으로 규정한 건 지금의 북·중 관계를 약 10년 전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정권의 핵심 정책인 핵 문제를 두고 북·중 양국 간에 근본적인 이견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계속 이행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주요 밀수 루트까지 단속을 강화하는 것도 양국 관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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