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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의 다섯 멤버 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은 영락없는 '요즘 아이들'이었다. 세대론 좋아하는 사람들의 정의에 따르면, '할 말을 좀처럼 참지 않고, 자기 권익 찾는 데 거침이 없고, 디지털 기술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아이들'. 아이돌인 아이들의 미덕은 그들의 노래 제목처럼 '슈퍼샤이'라는 걸 질리게 들었을 테지만, 뉴진스는 소속사 모르게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고 마이크를 잡았다.
30분 가까운 분량의 방송을 요약하자면, '뉴진스가 뉴진스 구하기에 나섰다'이겠다. 지구를 집어삼킬 기세로 잘나가던 뉴진스는 방시혁과 민희진의 싸움에 끼어 미래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뉴진스는 '가만히 있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어른들 일이라고 맡기고 계속 기다리기만 하기에는 너무 저희 다섯 명의 인생이 걸린 문제거든요." 2008년생 막내 혜인의 말이다. 누군가 부추겼을지는 몰라도, 뉴진스는 스스로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우리가 성공하려면 민희진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 메시지였다. 적어도 방송에서는 민희진에게 조종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민희진의 기획력을 이용할 줄 아는 주체로서 말했다.
10대 아이들의 당돌한 도발은 찬반으로 양분된 격론을 불렀다. 기사 댓글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글들을 보면, 뉴진스를 비판할 때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지들이 뭘 안다고." 뉴진스는 뭘 모르는 아이들이니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맥락상 '지들'이 가리키는 건 '생물학적으로 어린 사람들'과 '대중문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겠다.
뉴진스 멤버들의 평균 나이는 18세. 어려서 철없이 하이브에 맞서려 한다는 게 나이 따지는 사람들의 논리다. 그러나 '어리다'와 '어리석다'는 다르다. '미성년자'는 '미인간'이 아니다. 둘을 뒤섞는 의도는 순수하지 않다. 아이들을 종속적 존재로 묶어 두고 권리 행사를 제한해야 챙길 게 생기는 사람들이 주로 "애들은 가"라고 한다. 초중고교생들이 교내 성폭력을 고발한 '스쿨 미투' 때도 그랬다. "고발 내용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없으니까 (…) 그 불신을 이용한 가해자가 있고, 이를 방패 삼아 가해 사건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기록노동자 희정의 책 '뒷자리' 중에서)
한국에서 연예인의 정치사회적 발화는 위험한 금기다. "'딴따라'가 뭘 아냐"고 무시하다가도 "나 뭘 좀 안다"고 나서면 매장한다. '즐거움만 주는 호락호락한 존재'를 벗어나려는 순간 순수하지 않다고 매도한다. 그런 혐의를 쓰고 추락한 스타의 이름을 누구나 몇 명은 댈 수 있을 것이다. 뉴진스 기사에 "더러워졌군. 끝났어"라는 댓글이 달린 게 놀랄 일도 아니다. 그들은 방글방글 웃는 '상품'이어야 안전하다.
나는 뉴진스 히트곡 가사와 안무를 거의 다 외울 정도로 열성 팬이지만 그날의 라이브 방송이 패착이 될 가능성이 조금 더 크다고 생각한다. 법과 자본이 하이브에 기울어져 있어서다. 그러나 뉴진스의 용감한 목소리 내기는 이미 세상을 바꾸었다. 입이 틀어막힌 사람들,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힘을 줬다. 그리고 뉴진스가 바꾼 세상에서 뉴진스도 끝까지 괜찮아야 한다. 원하는 만큼 계속 말하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요즘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덜 후져질 것이다.
최문선 문화부장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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