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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추석 응급실 지킨 의사 "뺑뺑이 타령 그만…그러다 더 큰 위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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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18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환자를 응급실로 긴급 이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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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번 명절 응급실 상황에 대해 “추석 연휴 기간 일부의 우려처럼 우리 의료가 붕괴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실제로 가슴 철렁한 순간도 몇 차례 있었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큰 사고를 막았다.”(한덕수 국무총리)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연휴 이전부터 “추석 연휴보단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7개월째 접어들면서 의료현장을 지켜온 의사들의 피로가 누적되면서다. 정부는 '위기설'에 맞서 연휴에 인력 지원, 추가 수가 지원 등 물량 공세를 폈지만 무사히 연휴를 넘긴 이후에는 이런 지원들이 눈 녹듯 사라지게 된다. 이번 추석 연휴 응급실을 지킨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가 중앙일보에 현 상황을 담은 기고문을 보내왔다. 그는 “과도한 추석 응급의료 위기설로 인해, 이후 마치 ‘응급의료는 위기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국민과 정부, 언론에서 생기지나 않을까 정말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이 교수의 기고문 전문.

■ 2024년 추석 명절 연휴 응급의료 단상

국민들도 의료계도 정부도 누구나 걱정했던 추석 명절 연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추석 보름달도 못 보고 지나쳤다. 조그만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었던 모양이다.

벌써 7개월째를 넘겨 지속되고 있는 의료 현안은 언제 어떻게 해결될 지, 이제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전국의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고속도로는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찾아, 자녀를 찾아 귀성과 역귀성, 귀경과 역귀경의 흐름으로 변함없었고, 갑작스런 급성 질환이나 외상으로 인해 응급실을 찾는 응급환자들도 역시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예년과 다른 풍경이라면, 어느 대학병원(수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나 전공의(레지던트), 수련의(인턴) 없이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 한 두명만이 응급실을 24시간 지키고 있고, 그나마 경증, 비응급 환자들은 대학병원 응급실 내원을 자제하였고, 내원한 경증, 비응급 환자들께 당직 의원급 의료기관이나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안내하여도 정부가 때맞춰 발표한 관련 지침에 의거 응급진료 거부의 시비를 피할 수 있었다.

먼저 응급의료 이용에 불편을 기꺼이 감내해 주신 국민 여러분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들께 고개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인력 부족으로 도저히 24시간 응급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지역민들을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추석 연휴에 24시간 응급 진료를 기꺼이 감당해 주었던 강원대학교병원,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전문의)님들을 포함한 전국의 400여 응급의료기관에서 수고하신 모든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께도 경의를 표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추석 연휴 5일 동안, 필자 역시 3일을 응급실 당직 진료를 하면서, 학회 공보이사로서 틈틈이 언론에 보도되는 응급의료 관련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실(fact)에 근거한 기사나 방송 보도도 있었지만, 너무 과도하게 소위 ‘응급실 뺑뺑이’라며 왜곡된 보도를 볼 때는 참으로 안타깝고 허탈함마저 느꼈다.

정상적인 수용 능력 확인과 이송을 어떻게 ‘응급실 뺑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추석 연휴에 안과 응급 수술을 15시간 만에 받았다고 ‘응급실 뺑뺑이’라는데, 전공의 선생들이 정상 진료하고 있었던 설, 추석 연휴, 아니 주말 공휴일에도 안과 응급 수술을 15시간 만에 받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어느 종편 뉴스 리포트에서는 임신부 50분 응급실 대기까지 보도되었는데, KTAS 1,2등급에 해당하는 환자가 아니라면 활력징후 정상인 임신부가 50분 응급실 진료를 기다렸다는 것이 무슨 뉴스거리가 되는지 정말 의문스럽다. 손가락 절단 환자 사례는 해당 지역 국립의대 응급의학과 교수가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을 상세히 올렸을 뿐 아니라, 소방에서도 보도자료 배포하여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란 것을 자세히 설명했으니 재론의 여지가 없고, 복부 자해 자상 환자의 경우도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응급실 뺑뺑이’로 보도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응급실 진료 받고 타원으로 전원되거나, 119구급대가 수용 능력 확인을 위해 사전에 응급의료기관에 확인 전화를 한 사례까지 모두 ‘응급실 뺑뺑이’로 보도하고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어떤 응급 환자든지 첫 방문 또는 이송되는 응급실에서 모든 응급처치와 입원, 수술, 중환자실 입원과 같은 최종 치료를 받아야 ‘응급실 뺑뺑이’라는 보도가 사라질까? 우리나라, 아니 이 지구상에서 그럴 수 있는 병원이나, 지역,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응급의료체계, 전원, 이송 체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권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기관의 단계별 응급의료기관들과 기관 외 응급의료시설들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지정, 평가, 관리되고 있다. 응급의료의 선도국들도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현재 언론 보도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상적인 응급의료체계가 작동하고 환자의 생명과 안전에 아무런 위해가 없는 사례, 심지어 적정한 이송 사례까지 의학적 사실 확인 없이 ‘응급실 뺑뺑이’라며 몰아가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민들과 환자들, 보호자들은 점점 불안해하고, 심지어 119신고가 필요없는 경증, 비응급 환자까지 119구급대의 도움을 받아야만 응급실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119구급대의 구급활동에 필요없는 부담마저 더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발 그만 좀 했으면 한다. 추석 연휴 전에 대한응급의학회도 대한소아응급의학회도 정부도 지자체도 국민 여러분들께 당부드리고, 그 결과 경증, 비응급 환자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중증응급환자들은 일정하게 내원하였고, 한 두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밥도 못 먹고 물 한모금 못 마시며 중증응급환자를 진료하느라 정말 고생하고 있는데, 그런데 대다수 언론 보도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응급실 뺑뺑이’라니... 해도 너무 하고들 있다.

언론에서 사실 확인없이 보도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라, 정말 환자 생명과 안전에 위해가 발생한 사례는 철저하게 조사하고 원인을 규명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언론에서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타령은 이제 자제해 주셨으면 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도 내일도 변함없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까지 희생하며 연휴는 물론 24시간 365일 전국의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 셀 수 없는 응급의료인들의 사기를 꺽고, ‘정말 내가 이제 이 일을 그만 두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게 만드는, 사실이 아닌 보도는 그만해 주시기 바란다.

2주간의 ‘추석 명절 비상응급 대응 주간’까지 설정하고,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발표하고 수가를 한시적으로 인상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아직 대략 1주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추석 명절 5일 연휴가 이렇게 끝나가니 벌써 언론 보도를 통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된 추석 응급 의료 대란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도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한 추석 응급의료 붕괴설, 심지어 “추석에 1만명의 환자가 진료를 못 받을 것이다,” “환자가 죽어 나간다”와 같은 과도한 주장에 대하여 동의하기 어려웠고, 묵묵히 각자 근무하는 응급실에서 최선을 다해 응급 진료에 임하였다. 그렇지만 경증 비응급 환자들의 진료 대기나 진료 불편은 명확하게 예상되는 바였고, 사실도 그러했다. 정부의 대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정부의 대책만으로 추석 명절 연휴의 응급의료 대란이 없었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과도한 추석 응급의료 위기설로 인해, 이후 마치 ‘응급의료는 위기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국민과 정부, 언론에서 생기지나 않을까 정말 걱정스럽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도 사람이고, 7개월이 넘어가는 오랜 격무로 인하여 허리 디스크가 터져 수술을 받기도 하고, 골절이 발생하여 불가피하게 병가를 내기도 하였다. 점점 힘들어지는 응급의료 현장의 어려움은 연말로 갈수록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정말 걱정이다.

한시적 수가 대책 가운데 제도화, 상시화를 통해 응급의료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높이고, 민·형사상 법적 처벌과 손해 배상 최고액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법률, 제도적 개선이 속도감있게 정부와 국회에서 이루어져 빈사 상태에 놓인 응급의료 분야에 생기가 돌게 해야 한다.

국민들께서 예기치 못한 급성 질환이나 외상이 발생하여 적기에 적절한 응급의료기관에서 응급처치를 받아 생명을 구하고 후유 장애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전국 어디서나 어느 시간에도 반드시 응급의료체계는 지켜져야 하며 유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중앙일보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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