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세수 부족 사태가 예상된다. 이번에도 윤석열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이미 책정된 예산을 변경하는 것)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알아서 아껴 쓰겠다는 건데, 위험한 발상이다. 국회 의결을 거쳐 책정한 예산을 사실상 정부 맘대로 조정해서 쓰겠다는 의미가 숨어 있어서다. 나라살림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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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32조원의 세수펑크가 예상된다." 지난 2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최 부총리는 세수 결손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국채 발행을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 내 가용재원을 활용해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가용재원을 활용해 대응하겠다'는 건 정부가 임의로 예산을 조절하겠다는 거나 다름없어서다. 사실 추경은 국세수입 부족분만큼 빚을 내서 집행하는 게 아니다. 사정에 따라 일부 사업을 축소하거나 우선 순위가 급하지 않은 사업들을 뒤로 미뤄 부족한 세수에 맞게 다시 예산을 책정하는 것도 추경이다.
특히 국회 의결을 거쳐 국가 예산을 정했으니 변경을 할 때도 국회 의결을 거치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명목적 문제만 있는 건 아니다. 정부가 '알아서 대응해온' 결과도 신통치 않다. 하나씩 알아보자.
■ 성적표➊ 불용의 시대 = 올해 2월 정부가 발표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미집행액 규모만 49조5490억원이었다. 2022년 미집행액(17조9480억원)의 2.8배다.
정부는 당시 "국세수입 감소로 인해 자동적으로 줄어드는 지방교부세(금) 18조6000억원, 회계ㆍ기금 간 중복 계상된 내부거래 16조4000억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불용'은 10조8000억원(반올림으로 인해 약간의 오차가 있음)"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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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존재하지도 않던 '사실상 불용'이라는 개념을 끌어온 것도 이상하지만, 대규모 세수 부족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예산 축소나 재원 추가 확보 등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대규모 불용을 만들었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 성적표➋ 신뢰도 하락 = 일반회계에서 불용액이 가장 많은 정부부처는 기획재정부(12조3970억원)였다. 교육부(10조6668억원)와 행정안전부(8조2203억원)의 불용액도 만만찮았다. 그 뒤를 국토교통부(3조1235억원), 금융위원회(1조8610억원), 보건복지부(1조1642억원), 국방부(1조168억원) 등이 이었다.
이중 기재부와 교육부, 행안부의 불용액 합계는 중앙부처 전체 불용액(40조7456억원)의 76.8%를 차지했다. 해당 부처들의 불용액이 많은 건 국세 감소로 지방에 줘야 할 재원이 줄면서 많은 불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경을 하지 않는 바람에 지자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얘기다. 추경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재부의 집행률이 낮다는 건 또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 예산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기재부의 불용액이 높으면 예산 집행의 신뢰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미래세대 장병들의 병영생활관 개선을 위한 국방부 소관의 '병영생활관' 사업 예산 집행률도 65.3%로 낮았다. 그만큼 병영생활관 개선이 미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국토부가 주택도시기금으로 추진하는 '국민임대(융자)' '행복주택(융자)' '다가구매입임대(융자)' '통합공공임대(융자)' 사업들의 집행률도 신통치 않았다. '국민임대(융자)' 사업은 예산을 주택구입 전세자금과 전세임대(융자) 사업으로 전용해 예산 집행률이 49. 4%로 매우 저조했다. 물량계획을 잘못 짠 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행복주택(융자)' 사업과 '다가구매입임대(융자)' 사업, '통합공공임대(융자)' 사업은 당초 계획보다 축소되면서 집행률이 각각 53.4%, 45.2%, 43.3%에 그쳤다. 임의로 사업을 축소했다는 건데, 그 바람에 집 없는 국민이 정책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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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시설특별회계로 진행하는 국토부 소관의 '도시철도건설' 사업의 집행률도 63.8%로 낮았다. 심지어 '광주도시철도 2호선 건설' 사업의 집행률은 0%였다. 지자체에 국비가 교부되지 않은 탓이다.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도시 인프라 구축 사업의 집행률이 저조하다는 건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들 사업의 예산 집행률이 낮은 게 전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의도적으로 예산 미집행을 유도한 결과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이월이나 불용이 발생하는 사업들은 애초에 적지 않고,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숱해서다. 적절한 예산 편성과 관리 체계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정부의 자의적인 예산 미집행이 당장 필요한 사업들의 예산 집행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윤 정부의 책임이 없진 않다는 거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전문위원
syai12329@naver.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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